성시경, 이윽고 가수다…'발라드 사회학'

기사등록 2025/12/30 13:20:13

25~28일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서 연말 콘서트 '성시경' 성료

"슈퍼스타 김광석 살아 있었으면 포크 신 달라졌을 수도"

日 음악 예능물 출연으로 '고려청자' 별명 얻어 "일본서 성공하고파"

'희재' 후렴구 일부 처음으로 객석에 넘겨…인생에 남는 기억"

[서울=뉴시스] 성시경 콘서트. (사진 = 에스케이재원 제공) 2025.12.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빼어난 가수가 노래하는 것들은, 멜로디가 아닌 감정이다.

성시경은 이 방면에선 선수다. 심지어 데뷔 25년 만에 처음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산전수전에 이어 매니저전까지 감내해야 했던 올해에도 그는 무대에서 이를 증명했다.

성시경은 지난 25~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KSPO DOME)에서 연 단독 공연 '2025 성시경 연말 콘서트 '성시경''을 취소하려고 했다.

하지만 'SSK 응원봉'(일명 쓱봉)을 든 팬들을 연말에 만난 게 천만다행이었다. 사람은 홀로 있으면 결국 슬퍼진다. 모든 감정의 극단엔 슬픔이 있다고 어느 누가 말했다. '성발라', 즉 발라드에 특화된 성시경 노래도 그렇다. 하지만 좋은 노래는 그 감정을 대신 실어 나른다. 성시경과 그의 노래는 혹자의 아픔을 대신 앓는다. 콘서트는 그 상처를 관객 혼자 끙끙 앓지 않게 해준다. 성시경 발라드 콘서트는 그래서 치유다.

성시경의 이번 공연은 사회학 안에 접어 들어가 있다. 콘서트 마지막 날인 28일 객석에서 3시간30분 넘게 지켜보면서 든 생각이다.
[서울=뉴시스] 성시경 콘서트. (사진 = 에스케이재원 제공) 2025.12.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성시경은 정규 1집 '처음처럼'부터 중후반까지 앨범 발매 순서대로 곡을 들려줬다. 그 사이사이 영상, 토크 등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데뷔 이후 과정 등 삶을 공연에 녹였다. 그건 2000년대부터 2025년까지 한국 대중음악 풍경과 그 시절의 사회상을 스케치하는 일이기도 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가수가 무대로 꾸민 데뷔 25주년 기념 다큐, 그것이 이번 성시경 콘서트였다.

MBC FM4U '푸른 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 DJ 등을 맡아 입담도 검증 받은 성시경은 예능감이 뛰어난 가수다. 하지만 데뷔 직후 초창기 예능 활동이 힘들었다고 했다. 몸을 움직이는 예능 출연을 거절한 뒤 같은 방송사 음악 프로그램 출연과 관련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적도 있다. 2000년대 우리 방송계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가수가 노래를 알리기 위해 인지도부터 쌓아야 하는 사회 풍토도 반영한다. 성시경이 소속사를 옮겨 새 앨범을 발매하자, 전 소속사가 그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공개하지 않았던 음원을 돌연 발매하는 일도 있었다.

성시경은 하지만 천생 가수다. 처음 프로듀서로 나선 정규 5집 '더 발라드(The ballads)' 타이틀곡인 윤종신 작사·작곡의 '거리에서'는,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았음에도 그가 직접 고른 곡이었다. 하지만 성시경이 옳았다. 이 곡은 크게 히트했다. 성시경은 이날도 고음과 저음을 힘 들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오가며 '거리에서' 호흡을 오롯이 전달했다. '너의 모든 순간' '태양계' 등 성시경이 노래하고 있다는 걸 잊게 만드는 순간들이 수두룩했다. 성시경은 노래가 잘 됐다고 여겨지는 때는 자신이 노래하고 있다는 걸 잊을 때라고 했다. 성시경의 가창에 가장 탁월한 점은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가 짚은 것처럼, 노래를 말에 음표 붙인 것처럼 하는 것에 있다.

과거 리메이크 앨범 '제주도의 푸른 밤'을 발매하기도 한 성시경은 이번 콘서트에서 커버곡도 많이 불렀다. 뮤지컬 '판타스틱스' 넘버이자 홍콩 배우 겸 가수 리밍(黎明·여명)이 부른 영화 '유리의 성' OST로 국내 더 알려진 '트라이 투 리멤버'를 비롯 서태지와아이들 '너에게', 더클래식 '여우야', 여행스케치 '별이 진다네' 등을 재해석했다.
[서울=뉴시스] 성시경 콘서트. (사진 = 에스케이재원 제공) 2025.12.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별이 진다네'를 부르기 전 곧 30주기를 맞는 가객 김광석 이야기도 꺼냈다. 현재 국내에서 포크 신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김광석 같은 슈퍼스타가 살아있었으면 아마 이 신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성시경은 말했다. 좋은 가사 앞에서 한 없이 무너진다는 성시경도 포크 신에 한쪽 발을 걸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좋은 가사다.

긴 러닝타임을 발라드로만 채운다면, 아무리 성시경을 좋아하는 관객들이라고 지칠 수밖에 없다. '아이 러브 유', '미소천사' 등에서 댄스 실력을 과시한 그는 분홍빛 슈트를 입고 '빅뱅' 지드래곤의 솔로곡 '파워' 무대도 커버했다. 이날 게스트로 나선 '마마무' 멤버 겸 솔로가수 화사의 히트곡 '굿 굿바이' 무대엔 '청룡영화상' 시상식 당시 화사와 호흡을 맞춘 배우 박정민처럼, 일부 안무를 소화하고 퇴장했다. 박진영은 영상에서 "춤을 추려면 아예 잘 추거나 성시경처럼 춰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콘서트에선 최근 화제가 된 일본 예능 프로그램 출연 얘기도 나왔다. 성시경은 지난달 말 방송된 일본 후지TV 음악 예능물 '치도리의 오니렌챤'을 통해 현지에서도 가창력을 공인 받았다. 해당 프로그램은 기존 노래를 가사는 물론 음정, 박자 등을 다 맞춰 불러내야 하는 예능이다. 성시경은 영국 듀오 '왬!(WHAM!)의 '라스트 크리스마스' 등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이 방송에 대한 반응은 국내에서도 뜨거웠다. 성시경이 해당 프로그램에서 부른 일본 인기 록밴드 '백 넘버(back number)'의 '히로인(Heroine)'이 크게 조명,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에서 역주행하며 29일 자 일간차트에서 10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성시경은 이 프로그램에서 입고 나온 의상으로 고려청자라는 별명도 얻었다. 입고 나온 셔츠의 색감과 광택이 고려청자의 빛깔인 비색(翡色)과 닮아서다. '성시경 보유국'이라는 애칭까지 나왔다.
[서울=뉴시스] 성시경 콘서트. (사진 = 에스케이재원 제공) 2025.12.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와 함께 넷플릭스의 한일 맛집 소개 예능물 '미친맛집: 미식가 친구의 맛집'에도 출연한 성시경은 일본어에도 능통한데, 사실 오래 전부터 현지 진출을 준비해왔다. 성시경은 "내가 감히 방탄소년단(BTS)처럼 될 수도 없고, 되기도 바라지를 않는다.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이 나이에 어떻게 체조경기장을 채우나. 다만 일본에선 성공하고 싶다. 둘 다의 편이 돼 쓴소리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희재'를 얘기할 차례다. 성시경도 팬들도 이번 콘서트에서 가장 기억할 무대다. 성시경은 콘서트에서 마이크를 관객에게 넘기지 않기로 유명하다. 이별 노래가 많아 슬픈 감정이 극에 달하는데, 이를 관객들에게 넘겨 떼창하기엔 힘든 분위기라서다. 이번 콘서트 첫 날엔 '희재' 한 소절을 관객들에게 넘겼다. 그런데 온라인에 이와 관련 악플이 달렸다. 이를 읽은 성시경은 잠시 화가 났다고 털어놨다. "성시경, 이제 '희재'를 못 부르는구나. (가수로서) 끝났다"라는 악질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성시경은 이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두 번째 날부터 자신이 '희재'를 온전히 부르면 악플러에게 지는 거 같아 콘서트 나흘 동안 관객에게 후렴 일부를 계속 맡기기로 했다.

성시경은 "'희재'를 관객들에게 불러달라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렇게 하니까 너무 행복한 거예요. (후렴 일부를 안 불러서) 덜 힘들다기보다 관객 분들이 이해해주고 불러주셨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원래 가수와 관객이 히트곡을 같이 부르잖아요. 저는 그걸 너무 못 누리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제 인생에 남는 기억"이라고 특기했다.

원래도 가수였던 성시경은 그렇게 이윽고(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OST '너의 모든 순간' 별칭) 이윽고 이윽고 가수가 된다. 가수는 세월과 관객과 호흡하며 성장하는데, 이는 '가수의 사회학'이라 부를 법하다. 대중가수는 사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노래에서 정말 어려운 건, 홀로 부르는 게 아니라 같이 부르는 거다. 성시경은 갈수록 마치 다 겪어낸 것처럼 노래하는데 그건 훈계나 잠언으로 수렴하는 게 아닌 공감으로 발산한다. 그건 결국 구심력이 아닌 원심력의 노래다. 사방이 환하게 트인 360도 무대가 그래서 성시경에겐 적확하다. 콘서트 제목으로 '성시경'을 내세운 콘서트가, 당연하게도 성시경다운 이유다. 겨울은 지나가게 돼 있고 곧 봄날이 올 거다. 그건 과거완료시제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함께 걷는 이 길 다시 추억으로 끝나지 않게 / 꼭 오늘처럼 지켜갈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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