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안보라인 인사들에 1심 무죄 선고
法 "섣불리 형사책임 묻는 것엔 신중해야"
유족 측 "국가의 보호 의무 저버린 행위"
[서울=뉴시스] 장한지 기자 =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은폐 시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문재인 정부 안보 라인 인사들이 기소된 지 약 3년 만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공무원 유족 측이 정부의 월북 판단은 국가의 보호 의무를 저버린 행위라고 지적했다.
고(故) 이대준씨 유족 측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는 27일 입장문을 내고 "국가의 판단과 표현이 초래할 수 있는 고인과 유족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생명보호의무를 간과한 채 판결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법원은 국가가 사용한 '월북 가능성이 있다', '월북으로 판단한다'는 표현을 사실의 진술이 아니라 가치판단 또는 의견표현으로 봤다"며 "이러한 1심 법원의 논리는 개인의 사적 의견과 국가의 공식 발표를 동일한 기준으로 취급한 법리 오해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는 일반 국민과 전혀 다른 지위에 있다. 특히 국민의 생명이 침해된 사건에서 국가가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은 그 자체로 권력적 효과와 규범적 의미를 가진다"며 "국가의 공식 발표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사실상 사회적 진실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이 사건처럼 수사가 진행 중이었고 구조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국가가 '월북으로 판단한다'는 표현을 반복적·통일적으로 사용한 것은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라 국가 권위로 사실관계를 단정적으로 규정한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이 판결의 가장 큰 문제는 형사 무죄 판단이 곧 국가의 책임 부재로 오인될 위험을 낳고 있다는 점"이라며 "형사상 허위의 고의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공식 발표가 적정했는지,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았는지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며 검찰이 반드시 항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전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등 혐의로 기소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과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과 노은채 전 국정원 비서실장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이 2022년 말 차례로 기소된 지 약 3년 만에 나온 1심 결론이다.
재판부는 "절차적인 면에서 위법이 있다고 볼 증거와 내용적인 면에서 허위가 개입돼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고(故) 이대준씨에 대한 실종 보고 피격·소각 사실 보고 및 전파,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국정원 등의 대응, 해경의 수사 진행 및 수사 결과 발표 등에 있어 절차를 위반하는 등의 하자가 문제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씨의 피격·소각 사실을 보고받은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사실을 확인해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릴 것'을 명확하게 지시했고, 이에 따라 후속 조치가 이뤄졌다"며 "검사 주장에 따르면 피고인들이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지시를 어겼다는 것인데,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월북 몰이' 의혹에 대해선 "판단의 시기에 있어 성급하고 섣부르거나 내용이 치밀하고 꼼꼼하지 못했단 지적·비판을 가할 순 있어도, 미리 특정 결론이나 방향을 정해 놓고 그것에 맞춰 회의를 진행하거나 수사를 계속한 정황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국가는 국민이 어떤 의혹을 가지는 것에 대해 공식적인 판단을 제시할 의무가 인식된다"면서도 "제한된 정보이기는 하나 나름의 판단을 내리고 그 결론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필요한 상황인지 여부에 대한 국가 당국 책임자들의 판단 역시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이 사건 판결이 망인의 월북 여부를 확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검사가 제기한 공소사실에 대한 답변으로, 제출된 증거만으로 피고인들을 형사 처벌할 수 있을 정도로 유죄가 인정되는지 여부만을 판단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앞서 2020년 9월 고(故) 이대준씨가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살해되는 일이 발생했는데, 정권이 바뀐 후인 2022년 6월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하며 이 사건이 시작됐다. 감사원은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고, 국정원도 박 전 원장 등을 고발했다.
검찰은 이들이 이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격됐다는 첩보가 확인된 후 당시 남북 관계 악화를 우려해 이씨의 피격 및 소각 사실을 은폐하고, 이씨가 자진 월북했단 내용의 허위 공문서를 작성 및 배포했다고 보고 2022년 12월 순차 기소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서 전 실장은 2022년 9월 22일 이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격됐다는 첩보가 확인된 후 합참 관계자들과 해경청장에게 보안 유지 조치를 지시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혐의, 같은 날 피격 사망 사실을 숨긴 상태에서 해경으로 하여금 실종 상태에서 수색 중인 것처럼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박 전 원장은 보안 유지 방침에 동조하며 사건 1차 회의가 끝난 뒤 이 사건 관련 첩보 보고서 등 자료를 무단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서 전 장관도 해당 회의 직후 국방부 실무자에게 밈스(MIMS, 군사정보체계)에 탑재된 첩보 문건의 삭제를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취지가 담긴 보고서와 허위 자료를 작성해 배부한 혐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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