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솔아 "사랑을 '손해'로 보는 경향…그래서 더 사랑이 어렵다" [문화人터뷰]

기사등록 2025/12/27 11:00:00 최종수정 2025/12/27 11:03:20

제71회 현대문학상 소설 부문 선정

수상작 '사랑보다 조금 더 짙은 얼굴'

우연히 들은 옛 발라드서 시작된 소설

떠난 연인 흔적, 슬픔 아닌 기쁨으로 수용

"시-소설 오가며 행복…이젠 시 쓸 차례"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임솔아 작가가 지난 23일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12.27. jini@newsis.com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사랑이 지나간 시대, (사랑이) 낙후된 광기가 되어버린 근미래에서 연인을 잃고 혼자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하루라고 표현할까요."

제71회 현대문학상 소설 부문에 선정된 임솔아(38) 작가를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수상작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번 수상작은 단편 '사랑보다 조금 더 짙은 얼굴'이다. 출판사의 계간지 2025년 가을호에 먼저 실렸다. 수상작과 자선작, 최종 후보작 다섯편을 묶은 '사랑보다 조금 더 짙은 얼굴(2026 제71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이 최근 출간됐다.

'사랑보다 조금 더 짙은 얼굴'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홀로 살아가는 노년 여성의 일상을 따라간다. 주인공인 '할머니'는 세상을 떠난 연인 '윤미'와의 추억을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되짚는다.

이같은 구성에 대해 작가는 "과거를 곱씹는 일이 거기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무엇을 곱씹을지 내가 선택해 현재로 끌어오는 일이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집필은 올 여름 이뤄졌다. 펜을 들게 만든건 우연히 TV에서 흘러나온 조성모의 '투 헤븐(To Heaven)'이었다.

"어릴 적 노래라서 가사를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들어보니 죽은 연인에게 말하는 것 같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그 시절 그런 노래가 많았어요. 이지훈의 '왜 하늘은',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전부 죽은 연인을 향한 노리더라고요."

임솔아의 이전 작품 역시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했다. 가출 청소년을 다룬 '최선의 삶'은 그의 10대 기억이 밑바탕이 됐고, 유기견과 자매 이야기를 그린 '짐승처럼'은 반려견 ‘바밤바’에서 영감을 얻었다.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임솔아 작가가 지난 23일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12.27. jini@newsis.com

이번 작품은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익숙한 서사를 비틀어, 작품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저장하고, 계속해서 사랑을 지속한다.  주인공은 윤미의 흔적을 발견할 때 슬픔보다 반가움을 먼저 느낀다. 조금이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소설은 주인공이 바지 밑단에서 윤미의 머리카락을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이를 '좋은 아침'이라 표현하며 조심스레 수납장에 보관한다.

"무언가를 잃으면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것 같아요. 그게 사람이든 아니면 물질적인 것들 다요."

첫 장면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오래걸렸다고 털어놨다.

"주인공이 이 아침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정하는 데 오래 고민했어요. 그런데 그 장면을 쓰고 나니 뒤쪽 이야기까지 방향이 잡히더라고요."

사랑이란 감정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 말을 아끼면서도 세월과 함께 사랑의 의미가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옛 발라드 가사를 보면 헌신이 많아요. 그런데 요즘은 희생을 '손해'로 보는 경향이 커졌죠. 조건을 따지다 보니 연애를 하지 않게 되고, 그게 또 사회문제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이런 현상이 사랑을 더 어렵게 만드는거 같아요."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임솔아 작가가 지난 23일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12.27. jini@newsis.com

작품은 사랑은 결국  '피로'라는 감정으로 확장된다.

"우리는 줄곧 사랑을 찾아 헤매는 것과도 같은 피로 속에 살았다. 피로가 사랑보다 조금 더 짙은 얼굴을 한 채 표면을 차지한 때도 많았다. 우리는 우리의 피로를 우리의 사랑만큼 사랑했다." (21쪽)

임솔아는 "피로가 사랑과 반대되는 단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피로감은 노력의 흔적이고, 또 두 사람이 서로를 지키기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 피로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품은 연인의 부재(不在)를 견디는 그 감정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귀신'이라는 상징을 등장시킨다. 귀신은 모습만 바꾼채 주인공 곁을 맴돌며, 부재를 비극이 아닌 일상으로 받아들이도록 한다.

시와 소설, 두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집필 방식도 궁금했다.

임솔아는 "어떤 문장이 떠오르면 시로, 특정 키워드가 떠오르면 소설로 이어진다"고 했다.

"두 장르 모두 행복해요. 한 분야를 오래 쓰다 다른걸 쓰면 또 그렇게 기쁘더라고요. 학교에서 과목을 바꾸며 머리를 환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할까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요즘 소설을 너무 많이 써서 이제 시를 쓸 생각"이에요."

그는 현재 문예지에 발표할 신작 시를 준비 중이다.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임솔아 작가가 지난 23일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12.27. jin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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