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길 좁아진 중국인들, 발칸 세르비아 거쳐 독일행 늘어

기사등록 2025/12/18 09:25:12 최종수정 2025/12/18 09:32:24

친중 무비자 세르비아, 중남미 에콰도르 같은 통로 역할

무비자 세르비아·보스니아 거쳐 EU 크로아티아 불법 입국 루트

중동·북아프리카·남아시아 출신 불법 이민자 경로에 중국인 가세

[라하스 블랑카스=AP/뉴시스] 독일 도이체 벨레(DW) 방송은 중국 밀입국자들이 방향을 바꿔 발칸반도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오려고 하고 있으며 독일이 최종 목적지가 되고 있다고 16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사진은 미국에 가는 희망을 품고 '다리엔 갭'을 건넌 중국인 모녀가 지난해 11월 10일 파나마 라하스 블랑 카스에 있는 이민 관리소에서 대기하는 모습. 2025.12.18.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남미를 경유해 미국에 불법 입국하던 중국인들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엄격한 단속으로 차단되자 유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독일 도이체 벨레(DW) 방송은 중국 밀입국자들이 방향을 바꿔 발칸반도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오려고 하고 있으며 독일이 최종 목적지가 되고 있다고 16일 보도했다.

DW에 따르면 중국인의 난민 신청 건수는 지난 5년간 꾸준히 증가했으며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약 1600건이 접수돼 최근 수 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9월의 경우 중국은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소말리아 등 전쟁과 분쟁을 겪고 있는 국가들에 이어 난민 신청자 출신 국가 순위에서 8위를 차지했다.

중국인 밀입국 브로커들은 통상 중남미 국가들을 통해 미국 입국을 주선했다.

그러나 에콰도르는 지난해 7월 중국인에 대한 비자 면제 입국을 중단해 중남미로 들어오는 통로가 되는 길을 막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1월 취임한 뒤 멕시코 국경을 통한 불법 이민 통제가 강화되면서 발칸 반도의 동유럽 국가가 새로운 밀입국 경로로 떠올랐다.

중국인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세르비아가 과거 에콰도르같은 통로가 되고 있다.

밀입국 브로커들은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를 거쳐 역시 중국인에게 무비자인 보스니아가 두 번째 관문 역할을 한다.

중국 여행객들은 버스를 이용해 쉽게 보스니아에 입국한 후 국경 도시인 비하를 거쳐 유럽연합(EU) 회원국인 크로아티아로 향한다.

비하치에서 크로아티아로 들어가려면 산과 숲을 지나 불법으로 넘어야 한다.

일단 크로아티아에 들어오면 EU 국가와 솅겐 협정 체결국간 국경 개방을 통해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을 경유하는 기차나 장거리 버스를 타고 최종 목적지인 독일까지 이동한다고 DW는 보도했다.

이 경로는 중동, 북아프리카, 남아시아 출신 불법 이민자들이 EU에 입국할 때 오랫동안 인기 있는 경로였다.

이제 중국인들이 이 불법 이민 경로를 통해 유입되고 있는데 그 수는 이전의 중남미를 경유하는 미국행 경로에 비하면 훨씬 적다.

왕칭(가명·20)은 지난해 크로아티아 국경 경찰에 의해 여러 차례 강제 추방돼 보스니아로 송환되기도 했으나 밀입국 브로커에게 2000유로(약 340만원)를 주고 산과 강을 넘었다.

그는 보스니아를 떠난 지 1주일 만에 독일로 건너가 망명을 신청했다. 그는 독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DW는 소개했다.

DW는 세르비아, 보스니아, 독일에서 20명이 넘는 중국인 이민자와 인터뷰했다. 이들은 대부분 정치적 반체제 인사나 정치적 박해의 희생자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찾아 나선 경제적 이민자들이었다.

경제적 어려움 외에도 많은 중국인들은 자국의 식품 안전, 공공 의료, 교육, 차세대의 미래에 대한 암울한 희망 등이 출국의 원인이었다.

장밍(가명·43)은 한 때 고액 연봉을 받는 원양 선원이었으나 선원 생활로는 가족의 장기적인 생계를 보장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다 두 자녀가 학교에서 위장복을 입고 혁명가를 부르는 등 ‘애국 교육’을 받고 있는 것도 불만이었다.

그는 “중국의 현 상황을 바꿀 수는 없으니 탈출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중국 이주 노동자들은 독일 도착 후 난민 신청서를 제출하면 수개월에 걸쳐 여러 단계의 난민 수용 센터에 배치된다.

법에 따라 무료 숙식, 건강 보험, 사회 통합 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매달 약 400유로(약 70만원)의 생활비도 지급받는다.

이러한 조건은 다른 EU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해 독일이 중국 이주 노동자들에게 매력적인 목적지가 되고 있다.

하지만 독일에서 중국인 난민 신청 승인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독일 당국은 중국인 난민 신청 약 2000건 중 절반 이상을 거부했다.

신청자는 항소할 수 있으며, 전체 절차는 2~3년이 소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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