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현장
'급제동' AEBS 등 첨단 안전장치 시연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로 급가속 차단
AI 운전자 모니터링·사각지대 감지 장치
[화성=뉴시스]정진형 기자 = 주차된 차 옆을 시속 60㎞로 달리는 시험 차량 앞으로 초등학교 저학년 크기의 어린이 더미 인형이 튀어나왔다. 타이어가 노면을 긁으며 새된 마찰음이 퍼졌지만 차량은 그대로 더미를 치고 수 미터를 전진한 뒤에야 멈춰섰다.
김학선 한국교통안전공단(TS) 책임연구원은 "보행자를 인지한 후 차량이 전방 충돌 경고를 하고 보행자 감지 비상 자동 제동장치(AEBS)가 작동했는지를 평가한다"며 "로봇 장비를 활용해 충돌 당시 속도와 감속 정도를 따라 자동차 안전도 평가에서 점수를 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상자동제어장치 작동해도 시속 60㎞ 땐 보행자 더미 정면 충돌
뉴시스를 비롯한 취재진은 지난 4일과 5일 이틀간 경기 화성시 TS 자동차안전연구원과 화성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를 찾아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새로 도입된 첨단 안전장치(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를 살펴봤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은 총면적 214만㎡(65만평) 규모로 총연장 28.5㎞ 길이의 주행시험장과 실내시험시설 17개동을 갖추고 있다. 연구원 내에는 화성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와 자율주행실험도시(K-City)가 포함돼 있다. 자동차의 결함 조사와 안전도 평가, 자율주행차 상용화 시험과 버스·택시·화물차 등 영업용 운수 종사자에 대한 교통 안전 체험 교육을 실시하는 교통 안전 핵심 거점인 셈이다.
이날 시연한 비상자동제어장치(AEBS·Advanced Emergency Braking System)는 첨단 안전장치의 하나로 차량 주행 중 충돌 위험을 감지해 운전자가 적절히 반응하지 못할 때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충돌을 막거나 충격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AEBS 장착은 2023년 승용차와 3.5t 이하 화물·특수차량까지 의무화됐다.
김 연구원은 "주야간으로 시험했을 때 시속 60㎞에서는 물리적 한계 때문에 완전한 제동이 어려워 충돌을 회피하는 차가 거의 없다"며 "시속 20㎞나 40㎞에서는 AEBS 작동으로 거의 충돌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첨단 안전장치가 있더라도 주차된 차로 혼잡한 골목길이나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는 전방 주시와 함께 규정 속도인 시속 30㎞ 이하 서행이 중요한 이유가 증명된 셈이다.
◆급가속 때 신호 차단…"RPM 치솟아도 시속 40㎞ 이하 억제"
현장에선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시연도 이뤄졌다. 취재진이 탄 시험 차량이 시속 15㎞ 이하로 달리다가 액셀을 힘껏 밟았다. 순간 계기판에 표시된 RPM이 4000까지 치솟았지만, 길게 '삐' 경고음이 나오면서 차량 속도는 40㎞에 못 박힌 듯 올라가지 않다가 되레 떨어졌다.
운전을 한 형명우 국토교통부 사무관은 혀를 내두르며 "운전 경력 25년 만에 이렇게 액셀을 강하게 밟아본 것은 처음"이라며 "고령 운전자가 이 장치를 설치하면 정말 도움이 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령 운전자가 액셀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일어나는 교통사고는 꾸준히 늘고 있다. 전체 운전자 중 고령자 비율은 지난해 기준 14.9%로, 고령 운전 사망사고도 지난해에만 전체 사망자의 30.2%(761명)의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정부는 잇따르는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첨단 안전장치인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보급을 추진하고 있다. 이 장치는 비정상적인 가속 페달 장치 신호 변화를 감지하면 경보와 함께 가속 신호를 차단하는 구조로, 한 대당 설치 비용은 44만원이다.
현재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는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돼 실증 사업을 진행 중으로, 2029년부터 모든 신차에 설치가 의무화될 계획이다. TS는 경찰청, 손해보험협회와 함께 무상 보급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페달 오조작 장치 개발사인 스카이오토넷의 김성제 부장은 "현대·기아차 등 국내 차량으로 택시, 화물트럭, 1t 소형 트럭이나 수동·오토 모두 설치할 수 있다"며 "운전자가 액셀을 밟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 해 일어나는 사고를 막고, 설령 사고가 나더라도 가속을 막아 경미한 수준으로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소개했다.
◆"보행자 주의하세요"…AI 운전 모니터링·사각지대 방지장치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운전자의 위험 행동이나 교통법규 위반을 감지해 경보하는 'AI 모니터링'과 '사각지대 방지 장치' 시연도 있었다.
시험 차량인 버스를 모는 운전자가 눈을 감는 상황이 연출되자 "졸음 운전 주의하세요"라는 AI 음성 안내가 곧장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이어 정차 중인 버스 바로 앞을 보행자가 가로질러 가자 "보행자에 주의하세요"라는 경보가 나왔다.
AI기반 안전알림 시스템은 올해 버스 교통사고 다발 지역인 충남 천안시의 한 운수회사 버스 200대에 설치된 상태다. 이외에도 우체국 소포배달차량(1t)에도 시범사업 등을 통해 설치됐다.
이 장치를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고위험 노선버스 회사 13곳의 버스 500대에 설치해 운전자 위험 운전 행동을 모니터링한 결과, 2023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사고율이 55.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화성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에 새로 도입된 '인지 반응 속도 테스트' 체험도 진행됐다. 시험 차량 운전 중 예고 없이 "돌발 상황 발생, 정지하세요"라는 경고 음성이 나오면 브레이크를 밟아 반응속도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운전자는 1초 이내에 반응하지만, 고령 운전자의 반응 속도는 2초를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TS는 "첨단 안전장치는 운전자가 직접 운전하는 조건에서 보조 및 지원해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어서 모든 주행환경에서의 대응은 불가능하다"며 "운전자 역시 첨단 안전장치를 활용하더라도 운전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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