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어쩌다 환율 구원투수가 됐나요[금알못]

기사등록 2025/12/01 06:00:00 최종수정 2025/12/01 15:08:25

[서울=뉴시스]우연수 기자 = 최근 원달러 환율이 심상치 않습니다. 11월 현재 환율은 달러당 1470원을 돌파하며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1500원대 진입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입니다.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는데요.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한국은행, 그리고 국민연금공단이 참여하는 소위 '4자 협의'를 전격 가동한 것입니다. 외환당국은 이 협의체를 통해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가 외환시장에 미치는 구조적인 영향을 점검하고 연금의 수익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 즉 '국민연금 뉴 프레임워크'를 논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국민연금이 소환된 이유는, 국민연금이 국내 외환시장의 가장 '큰 손'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은 국내 투자 비중은 줄이고 해외 투자 비중은 늘리는 장기 전략을 펴고 있습니다. 해외투자를 하려면 원화를 달러로 바꿔야 하고 이 과정에서 대규모 달러 매입 수요가 발생합니다. 이는 구조적으로 시장에 환율 상승 압력으로 이어집니다. 국민연금의 운용자산 1361조2000억원 중 해외주식(508조2000억원)과 해외채권(96조6000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44.4%에 달합니다.

해외투자를 그만두라고 할 순 없지만, '환헤지', 그리고 한국은행과의 '통화스와프'를 통해 시장을 안정시킬 수는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 부분은 환헤지입니다. 환헤지는 사전에 특정 환율을 고정하는 거래입니다. 예를 들어 환율이 1000원일 때 테슬라 주식에 환헤지로 투자했다면, 환율 변동과 상관없이 향후 테슬라 주식이 오른 만큼의 수익률만 얻을 수 있습니다. 환율이 800원으로 20% 떨어져 주가 수익률이 상쇄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국민연금이 환헤지 비율을 늘리면 외환시장에는 달러가 풀리게 돼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됩니다. 선물환에서 매도 포지션을 잡거나 실제로 달러를 매도하는 방식으로 환헤지가 이뤄져 시장에 달러가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외환당국은 환율 급등 상황마다 국민연금에 환헤지 비율을 상향하라고 요청해오고 있습니다.

현재 국민연금이 쓸 수 있는 최대 헤지 비율은 15%입니다. 2022년 12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전략적 환헤지 비율을 0%에서 최대 10%까지 한시적으로 상향했는데, 이 한시적 조치를 1년씩 연장해와 올해까지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전략적 환헤지 외에도 시장 상황에 따라 기금운용본부가 플러스마이너스 5% 내외로 조정할 수 있는 '전술적 환헤지' 수단이 있어, 최대 헤지 비율이 15%가 되는 것입니다.

전략적 환헤지는 발동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이례적으로 높은 환율'일 때만 환율 정상화(하락)에 대비해 활용할 수 있는 카드이기 때문입니다. 조건이 외부에 공개돼있진 않지만 시장에서는 1480원 이상 등 1400원 후반대에서 발동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환헤지 효과는 확실했습니다. 지난 1월 국민연금은 처음으로 전략적 환헤지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는데 환율이 하루 만에 20원 가량 하락했습니다. 달러당 1450원을 넘었던 환율은 1350원까지 떨어졌습니다.

다만 국민연금에게도 '윈윈(win-win)'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큽니다. 자칫 전략적 환헤지가 국민 노후 자금의 수익률을 갉아먹으면서 구원투수 노릇만 할 수도 있다는 비판입니다.

국민연금은 2015년 이후 해외 투자의 전략적 환헤지 비율을 0%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일상적 상황에서는 환율이 장기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 100% 환노출이 수익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5년 원달러 환율이 1100원대였던 점을 고려하면 해외 투자 자산 자체의 수익률을 제외하고도 환차익으로만 20% 넘는 수익률을 올렸습니다.

그럼에도 환헤지 전략을 두고 있는 이유는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갑작스레 치솟았을 때 달러를 높은 가격에 조달해 투자하면 향후 달러가 안정화됐을 때 환차손을 볼 수 있기 때문인데, 문제는 지금의 환율 상황이 '일시적 고환율' 상태인지 알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이미 전문가들은 이미 1200원대 시절의 환율로는 돌아가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달러당 1400원대가 '뉴노멀(new normal)'이 될 거란 분석입니다.

정부는 수익률이 우선이라는 국민연금 입장에 동의하면서도, 국민연금의 막대한 해외 투자 과정에서 외환시장이 왜곡되는 문제는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달러 매입 수요로 환율이 구조적으로 오르고 있는 만큼, 수익률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환헤지 전략을 유연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정부는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만 시장에서는 환율이 뛸 때마다 '또 연금이 투입될까' 반응을 살피는 일이 반복되고 있스빈다. 국민의 노후자금이라는 점에서 국민연금이 환율 압력을 완화하는 데 어느 선까지 나서야 하는지, 또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인간의 중대 관심사인 돈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금융 지식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금리, 투자, 환율, 채권시장 등 금융의 여러 개념들은 어렵고 낯설기만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가 '금알못(금융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금융을 잘 아는 '금잘알'로 거듭나는 그날까지 뉴시스 기자들이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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