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한 혐의
1·2심 모두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선고
"현안 시급하다며 원칙 위배해 직무 수행"
"사법부 공정·중립성 대한 국민 신뢰 훼손"
[서울=뉴시스]홍연우 기자 =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2-1부(부장판사 홍지영·방웅환·김형배)는 27일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항소심에서 그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2심은 임 전 차장의 구체적 혐의에 대해 1심과는 다소 다른 판단을 내놨다.
2심은 임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가면 판매를 중지시킬 법적 압박 수단을 검토해 문건을 작성하라고 지시한 혐의에 대해 1심의 무죄 판단을 뒤집고 유죄로 판단했다.
임 전 차장의 지시는 박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정보나 자료를 제공하려는 현실적 의도 아래 법률 자문을 제공할 목적으로 법적 검토·작성을 지시한 것으로서 직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또한 대내외적 비판세력의 탄압을 위해 국제인권법연구회 위축 방안을 검토해 보고서를 쓰도록 지시하고,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선거 및 운영에 개입한 것 역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며 일부 유죄로 판단했다.
아울러 2심은 공보관실 운영비 예산을 편성 목적과 다르게 각급 법원장들과 법원행정처 간부들의 대외업무 활동비로 집행하도록 지시한 것에 대해 업무상 배임죄뿐 아니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국고 등 손실)죄도 성립한다고 봤다.
대전지법 공보관실 운영비 예산 집행 관련 허위공문서 작성에 대해서도 지급명세서의 내역란 기재가 허위이므로 전체적으로 허위라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다.
반면 임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 개입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허위 해명자료를 작성·행사했다는 혐의에 대해선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해명 내용 요약 부분이 삭제되지 않은 점에 비춰보면 임 전 차장에게 행사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해명자료 수정본 파일이 출력됐음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현금성 경비 마련을 위해 기획재정부 공무원을 기망해 공보관실 운영비 예산이 반영된 예산안을 편성하도록 해 국회의원들의 직무집행을 방해했단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피고인이 저지른 위와 같은 범행은 법관들이 다른 국가권력이나 내·외부 세력의 간섭이나 영향을 받지 않고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다해야 하는 본분을 망각하고 사법부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법부가 어렵게 쌓아 온 신뢰를 훼손시키고 법원 구성원들에게 큰 실망과 충격을 안긴 데 대해 무한한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낀다고 토로하고 있고, 이 사건으로 500일 넘게 구금되기도 했다"며 "피고인에게 유·불리한 정상 등 여러 양형 조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임 전 차장은 이날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후 법적 대응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저는 아직 재판 중인 피고인이기 때문에 관련 말씀은 안 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짧게 답했다.
앞서 임 전 차장은 2012년 8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으로 근무하며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2018년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 옛 통합진보당 의원의 지위확인 소송에 개입했다는 혐의, 법원 내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진보 성향 모임의 와해를 시도했다는 혐의 등이다.
1심은 지난해 2월 임 전 차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1심은 "사법부의 다른 국가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이념이 유명무실하게 됐다"며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국민 신뢰가 저하됐을 뿐 아니라 법원 구성원에게도 커다란 자괴감을 줬다"고 지적했다.
다만 "사법농단의 핵심으로 지목돼 오랜 기간 질타의 대상이 됐고, 긴 시간 동안 유죄로 판명된 사실보다 혐의를 벗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비해야 했던 사회적 형벌을 받았다"며 "이 사건 범죄와 관련해 500일이 넘는 기간 구금되며 자신의 과오에 대해 반성도 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임 전 차장 측과 검찰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2심 재판이 열리게 됐다. 항소심에서도 검찰은 임 전 자창에게 1심과 같은 징역 7년의 실형을 구형했다.
한편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에 개입할 직무상 권한이 없으므로 이를 남용했다는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다만 검찰은 2심에서도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에 대해서도 각각 징역 5년과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의 2심 선고는 지난 26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내년 1월 30일로 기일이 연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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