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장 추행·몰카범, 도주 중 "휴대전화 분실"
도주로서 발견 휴대전화, 검찰 압색영장 반려
"유류물은 예외" 영장 없는 포렌식 증거 제출
法 "은닉 시도, 증거 수집 위법"…추행만 유죄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수사기관이 성범죄 피의자가 달아난 현장에 놓인 휴대전화에서 압수수색 영장 없이 확보한 불법 촬영영상물의 증거 능력은 인정될까.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이 필요치 않은 '유류품'으로 판단해 확보한 증거로 불법 촬영 혐의로 기소했지만, 1심 법원은 "적법 수사가 아니다"며 일부 무죄로 판결했다.
A씨는 지난해 10월20일 광주 서구 도심 한 축제 현장에서 외국인 여성들에게 다가가 자신의 신체를 밀착시키는 등 추행했다. 한 목격자가 제지하며 경찰에 신고하자 A씨는 황급히 달아났다.
'몸을 부비고 몰래 촬영도 한 것 같다'는 신고에 경찰이 출동했다. 경찰을 피해 A씨는 인근 광주천변까지 도주했고, 하천을 건너갔다.
경찰에 붙잡힌 A씨는 추행 혐의는 시인했다. 경찰은 이른바 '몰카' 범죄 여부를 확인하려고 A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려 했다.
그러나 A씨는 "하천을 건너면서 주머니에서 빠뜨린 것 같다. 일부러 버린 건 아니다"며 '분실' 주장을 했다.
이튿날 경찰은 도주로 수색을 벌여 천변 가로수 밑동 주변에서 휴대전화 1대를 발견했다. 발견 당시 휴대전화 전원은 켜져 있었지만 비밀번호가 설정돼 있었다.
경찰은 여러 정황에 비춰 A씨가 도주 중 고의로 증거를 인멸하려고 휴대전화를 가로수 둥치에 반쯤 묻은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에 경찰은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자정보(사진·영상)를 확인하려고 '디지털 포렌식' 압수수색·검증 영장을 검찰에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A씨가 도주 과정에서 버리고 간 유류물이라면 영장이 필요치 않다'며 반려했다. '유류물'은 잃어버린 물건 '유실물' 뿐만 아니라 자의로 유기한(버린) 물건도 포함한다는 판단이었다.
검찰은 형사소송법 218조 '피의자 등이 유류 물건이나 소유자·소지자 또는 보관자가 임의 제출한 물건을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다'는 이른바 영장주의의 예외 규정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경찰도 영장 없이 휴대전화 내 저장장치(SD카드)를 감정했다. 분석 결과 휴대전화에서는 여성들의 신체 일부를 확대해 촬영한 불법 도촬 사진·영상이 다수 확인됐고 이를 증거로 압수했다.
이어진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뒤늦게 불법 영상물이 저장된 휴대전화가 자신의 것임을 인정했다.
경찰은 A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송치했고 검찰을 거쳐 재판에 넘겨졌다.
A씨 측은 재판에서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라며 불법 촬영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거듭 영장주의의 예외라고 맞서며 징역 3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법원 판단은 달랐다.
광주지법 형사3단독 장찬수 부장판사는 14일 연 공판에서 추행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쟁점이 됐던 불법 촬영 혐의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가 위법 수집 증거로서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장은 "대법원 판례와 확인된 사실 관계에 비춰보면 A씨가 발각돼 도주한 경위, 발견 당시 휴대전화가 절반 가량 묻혀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A씨는 휴대전화 내 전자정보(영상물)의 관리 처분을 포기하려는 의사가 아니라 일단 추적을 따돌린 뒤 되찾겠다는 의사였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수사기관 역시 A씨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은닉한 것으로 디지털 포렌식 전에 의심하고 있었고 심지어 유류분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기도 했다. 영장주의의 예외는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A씨의 휴대전화를 유류물로서 영장 발부나 A씨의 참여 없이 적법하게 압수수색이 가능한 물건이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A씨는 '35년간 성실히 살며 기업 이사로 재직 중이다', '세 아이를 키우는 가장이다'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재판장은 유죄로 인정된 추행 혐의에 대해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장은 "10년여 전 동종 전과로 벌금형 처벌 전력이 있는데도 또 범행했다. 불특정 다수가 드나드는 축제 현장에서 혼잡한 틈을 타 범행을 저질러 죄질이 좋지 않다. 피해자로부터 용서도 받지 못했다. 특히 언어·지리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 여성만을 노려 더욱 죄질이 좋지 않다"며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A씨를 법정 구속했다.
아동·청소년·장애인 기관 취업 제한 5년, 40시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도 명했다.
이같은 선고 결과에 대해 광주지검은 "항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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