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료 붕괴, '의사 수' 부족 아닌 시스템 실패
한국, 의료 수준 높지만 지역 간 의료 격차는 커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의기협)와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의학한림원)은 13일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지속가능한 지역의료 생태계 구축을 위한 해법 모색'을 주제로 제4회 미디어포럼을 공동 개최했다.
'붕괴위기 지역의료, 무엇이 문제인가'로 주제 발표를 맡은 조희숙 강원특별자치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강원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은 "지역 병원에는 환자가 없고, 환자에게는 병원이 없다는 역설은 모순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지역은 중증을 최종 치료할 역량이 부족한데다 인구 감소와 진료량 중심의 수가체계, 의료인력의 지역 이탈이 맞물리면서, 지역이 인프라를 갖춘다 해도 경영난에 빠지게 되고 결국 환자와 의료공급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집중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게 조희숙 단장의 설명이다.
조 단장은 "지역의료 붕괴는 단순한 의사 수 부족의 문제가 아닌 의료시스템의 실패"라며 "압축 성장기에 전국 단일 틀로 설계된 정책과 행위별 수가 중심의 보험 구조, 수도권 중심 개발, 광역 교통망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다층적·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건강보험 체계 안에서 시장 논리에 방치돼 고사한 취약지에는 일회성 사업비나 단순 수가 가산을 넘어 '핀셋'형 집중 지원이 필요하다"며 "중장기적으로는 환자의 의료이용 체계를 재설계하고 지역의 진료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인력·시설·재정을 함께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봉식 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이 '선진국의 지역의료 정책' 발표를 통해 미국·일본·독일·영국 등 주요 국가의 지역의료 정책을 비교, 분석하고 우리나라 지역의료 문제의 구조적 특성을 설명했다.
우봉식 전 연구원장은 ▲재정 인센티브 ▲지역 의무복무 ▲임상 교육 강화 ▲비(非)의사 인력 활용 ▲원격의료 등 복합적인 정책 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는 선진국들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한국은 전체적인 의료 수준은 높지만 지역 간 의료 격차와 치료 가능 사망률에서는 개선이 필요하다"며 "단순한 공공의대·공공병원 확충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지역정원제, 원정 진료 지원, 지역 수련 강화 등 국내 현실에 맞는 제도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역의료 문제를 갈등의 소재가 아닌 '지속 가능한 의료 체계로 나아가기 위한 공동 과제'로 인식하고, 다층적·균형 잡힌 정책 논의로 발전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박은철 의학한림원 부원장(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이 '공공의대, 지역의료 살리기 해법인가'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박은철 부원장은 "지역 간 의료불균형과 필수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공공의대 설립이 거론되고 있지만 지역인재전형·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공중보건의사제도 등 기존의 정책과 비교했을 때 공공의대를 통한 지역의사 정책은 비용, 효과 그리고 시기적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박 부원장은 지역의료 회복을 위한 방안으로 ▲진료권 설정 및 개입 ▲환자이송체계 개선 ▲지방상급종합병원의 지역의료 책임성 강화 ▲정보지능기술 활용 등을 제시했다.
강동윤 대한예방의학회 총무이사(울산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디지털헬스와 지역의료'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해외의 지역의료 디지털헬스 성공 사례는 보통 무의촌 원격진료 모델이지만 한국은 이미 충분한 인프라가 있어 '데이터 주치의' 같은 의사 역량 증강 모델이 더 적합하다"며 "디지털헬스가 지역의 소멸 자체를 막을 순 없어도 마지막까지 지역 주민들의 의료의 질과 접근성을 지키는 주요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역의료 위기로 말하는 분만·소아·응급 공백은 한국 의료 전체의 구조적 문제로 디지털 도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의료 체계 개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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