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끝에서 고개를 든 소년들…뮤지컬 '타조 소년들' [객석에서]

기사등록 2025/10/12 11:00:00 최종수정 2025/10/12 11:20:25

친구의 죽음으로 시작된 소년들의 여정

자신들의 비겁함 마주하며 조금씩 성장

와이어 이용한 연출 눈길…소품 최소화

11월 23일까지 대학로 TOM 1관서 공연

뮤지컬 '타조 소년들' 공연 사진. (사진=뉴프로덕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로스를 로스로!"

여기, 로스를 스코틀랜드 로스로 데려가려는 세 친구가 있다. 하지만 이건 평범한 여행이 아니다. 로스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유골함을 들고 나선 이 길은, 그들을 더 넓고 먼 곳으로 안내한다.

지난달 4일 개막한 뮤지컬 '타조 소년들'은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시작되는 소년들의 여정을 그린다.

"로스를 아는 건 우리뿐"이라고 자부하는 블레이크, 케니, 심은 어른들의 형식적인 장례식에 분노하고, 로스를 위한 자신들만의 장례식을 치르기로 한다.

이들은 로스가 생전 가보고 싶어 했던 로스로 향하기로 하지만, 케니가 가방을 잃어버리면서 여행은 시작부터 삐걱댄다.

길 위에서 로스의 죽음에 얽힌 진실이 하나둘 드러나고, 계속되는 사건 속에 세 소년이 품고 있던 비밀과 상처도 서서히 고개를 든다.

누군가는 위험에 빠진 로스를 외면했고, 누군가는 도움을 거절했으며, 누군가는 배신했다.  처음엔 분노로 포장돼 있던 감정이 사실은 죄책감의 다른 얼굴이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닫게 된다.
뮤지컬 '타조 소년들' 공연 사진. (사진=뉴프로덕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두려움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머리를 모래에 묻는 타조처럼, 세 사람은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도망쳐 왔다. '타조 소년들'이라는 제목은 그 비겁함과 성장의 상징인 셈이다.

이야기는 완벽한 용서나 화해 혹은 해피엔딩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소년들이 고개를 들어 비겁했던 자신들의 모습과 마주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순간 이들이 한 뼘 자라났음을 느낄 수 있다.

원작은 영국 작가 키스 그레이의 동명 소설로, 블레이크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이번 공연은 죽은 로스가 화자가 돼 친구들의 여정을 따라간다.

친구들이 로스를 떠올리며 괴로워할 때, 안타까운 눈길로 그들을 지켜보는 로스의 시선에는 원망보다 따뜻한 이해가 깃들어있다. 로스가 무대 위 여러 인물로 분해 친구들의 여정을 돕는 것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지점이다.  

소극장에서 보기 힘든 와이어를 이용한 연출이 눈길을 끈다. 무대가 크지 않지만, 의자와 손전등 등 간결한 소품만으로 이들의 여정을 표현해낸 점도 흥미롭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소년들의 마음은 피아노 없이 드럼, 일렉 기타 등으로 풀어낸다.

로스 역에는 홍승안·박두호·정지우, 블레이크 역에 박정원·김서환·곽민수가 출연한다. 케니 역은 신준석·신은호·류동휘, 심 역은 김준식·조민호·김경록이 나선다.

다음 달 23일까지 대학로 TOM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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