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라 스칼라 필하모닉 내한 공연…서울 예술의전당
2027년 라 스칼라음악감독 취임 전 한국서 첫 호흡
정명훈 "서로를 이토록 이해하는 오케스트라는 없다"
베르디부터 차이콥스키까지…36년 세월이 쌓은 눈부신 호흡
[서울=뉴시스]조기용 기자 = 2027년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을 수놓을 장면이 서울에서 미리 펼쳐졌다.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차기 라 스칼라 극장 음악감독 정명훈(72)이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정명훈은 지난 5월 극장 247년 역사상 첫 동양인 음악감독으로 선임돼 2027년부터 오케스트라를 이끈다.
공연은 정명훈의 대표 레퍼토리로 꼽히는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으로 막을 열었다. 베르디를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로 꼽은 그가 이날 공연의 첫 곡으로 베르디를 선택한 것은 라 스칼라를 이끌 자신의 미래에 대한 선언 같았다.
현(絃)의 울림이 두드러졌다. 정명훈의 지휘 아래 바이올린의 혼연일체된 선율이 관악의 중후한 울림과 어우러져 격정의 흐름을 만들며 무대는 단숨에 베르디의 세계로 옮아갔다.
이어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가 함께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초반엔 다소 긴장된 호흡을 보였지만, 2악장에서 정명훈과 루간스키는 눈빛을 교환하며 악단과의 호흡을 회복했다. 피아노의 섬세한 터치와 오케스트라의 호흡은 정명훈의 손끝에서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였고, 객석은 음악의 회복력에 빠져들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에 이르러 공연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이 작품은 차이콥스키가 남긴 마지막 교향곡이자 그가 영혼을 쏟아부은 곡이다. 정명훈은 시작 전 깊게 숨을 고르고 무대와 함께 호흡하듯 지휘봉을 들었다.
정점은 3악장이었다. 현악은 질주하듯 휘몰아쳤고 관악이 이를 묵직하게 받쳐주자 객석은 숨조차 삼켰다. 4악장이 남아 있었지만 관객들은 참지못하고 탄성과 박수를 쏟아냈다. 음악의 격량 앞에서 클래식의 예법은 무력했다.
이에 정명훈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박수를 유도했다. 좀처럼 무대 위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보여준 이례적 모습이었다.
2부가 끝나자 정명훈은 1989년 라 스칼라 데뷔 이후 36년간 이어진 인연을 거론하며 "라 스칼라 필하모닉은 가족 같다"며 "이토록 서로를 이해하는 오케스트라는 없다"고 했다.
공연은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으로 마무리됐다. 관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정명훈과 라 스칼라 필하모닉에 경의를 보냈고 그 순간, 서울의 무대는 이미 밀라노로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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