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란 어쩔수가없다…박찬욱 "누군간 인생 통째 바쳐"

기사등록 2025/09/17 17:56:30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기자회견

시사회 후 "영화에 관한 영화"라는 평가

박찬욱 "제지 전혀 몰라도 그 마음 알아"

"아무것도 아니란 일에 모든 걸 바친다"

[부산=뉴시스] 박진희 기자 =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어쩔수가없다' 감독 박찬욱이 1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0.17. pak7130@newsis.com

[부산=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올해 30주년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작으로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를 선택한 건 언뜻 필요에 의한 선택처럼 보였다. 30번째라는 상징성, 2014년 '다이빙벨 사태' 이후 침체 일로를 걸어온 영화제를 다시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 박찬욱이라는 이름값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했다.

17일 오후 개막식을 앞두고 '어쩔수가없다' 시사회가 열렸다. 영화 상영이 끝나자 한국영화 현실을 생각할 때 이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을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시사회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나온 첫 두 개 질문은 모두 '이 작품이 영화를 만드는 것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뤘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가 갑작스럽게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키기 위해, 재취업을 하기 위해 자신만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언뜻 영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제지업계에 몸담았던 만수라는 인물이 평생을 몸담았던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하지만 반드시 그 일을 다시 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며, 이 일이 아니면 안 된다고 고집을 피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건 어쩌면 영화에 관한 영화로 보인다.

박 감독은 "관객은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인의 삶을 떠올리기보다는 각자 자신의 삶을 떠올릴 거다"면서도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쉽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부분 사람들은 종이 만드는 일을 그렇게 중요한 일로 생각하지 않는데, 주인공은 그 일을 자기 인생 자체로 생각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영화라는 게 어떻게 보면 삶에 큰 도움을 주는 건 아닐 수도 있어요. 그저 두 시간 짜리 오락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런 일에 자신이 가진 걸 모두 쏟아부어서, 인생을 통째로 걸고 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에 쉽게 동화될 수 있었습니다. 전 제지업계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그 주인공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는 겁니다."
[부산=뉴시스] 박진희 기자 =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어쩔수가없다' 배우 이병헌이 1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0.17. pak7130@newsis.com

이 작품은 미국 작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트(Donald E. Westlake)가 1997년에 내놓은 소설 '액스'(The Ax)가 원작이다. 이 작품은 중산층 남성이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한 뒤 다시 취업하기 위해 잠재적 경쟁자들을 살해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다.

이날 박 감독의 얘기는 결국 한국영화 현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금 영화업계가 어렵고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팬데믹 상황에서 회복이 더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영 이런 상태에 머무르진 않을 거다. 저희 영화가 이 구렁텅이에서, 늪에서 빠져나오는 데 조금이라고 역할을 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주인공 만수를 연기한 배우 이병헌 역시 박 감독과 비슷한 애기를 했다. 그는 최근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현지 언론을 만났을 떼도 이 작품이 영화계 현실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했다.

"영화 속에서 종이는 그 쓰임새가 점차 사라져가죠. 제지업계와 비슷한 어려움을 영화계도 겪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나 극장의 어려움이 크죠. 아마 모든 영화인이 공감하는 얘기일 겁니다. 극 후반부엔 인공지능(AI) 관련 얘기도 나오죠. 그것 역시 영화인이 느끼는 큰 위협 중 하나입니다. 그런 지점에서 이 영화의 이야기와 영화업계 현실엔 공통점이 많다고 봅니다."

이병헌 뿐만 아니라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배우 박희순·이성민·염혜란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손예진은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며 "박 감독님 같은 분이 영화를 더 많이 만들어달라"고 했다. 박희순 역시 "영화인이 더 힘을 내서 더 좋은 영화를 만들면 관객도 반응해서 영화 산업이 좋아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뉴시스] 박진희 기자 =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어쩔수가없다' 감독 박찬욱, 배우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염혜란, 이성민이 1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0.17. pak713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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