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이익 5% 내 과징금·영업정지 등 제재
건설업계 "영업이익률 낮은데…수주 위축"
"적정 공기·공사비 구체성 떨어져" 아쉬움
"해외처럼 발주자 안전 관리 책임 강화를"
[서울=뉴시스]정진형 기자 = "발주자가 생각하는 적정 공기, 공사비가 현장의 생각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정말 안전을 위해 실효성 있는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시공사만 책임지는 구조는 변하지 않을 듯합니다."
정부가 중대 산업재해의 뿌리를 뽑기 위해 영업이익의 최대 5%, 최소 3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건설업 영업정지와 면허 취소 허들을 낮추는 고강도 제재를 도입한 것에 대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의 반응이다.
건설업계에선 강화된 제재에 긴장감을 높이면서 시공사에 대한 처벌만 강화할 게 아니라 발주자도 책임을 지고 안전을 신경 쓰도록 하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에는 ▲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 발생 법인에 영업이익 5% 이내 과징금 부과 ▲건설업 영업정지 요건 연간 다수 사망으로 확대 ▲3년간 영업정지 2회 처분 후 영업정지 사유 추가 발생시 건설업 등록말소 ▲공공입찰 참가 제한 기준 확대 등 중대 산재 발생 시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제재 조항은 대부분 산재 사망사고 비중이 높은 건설업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용노동부의 '2025년 2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 -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올해 2분기까지 사망한 근로자 287명 중 건설업 비중은 138명(130건)으로 전체 사고 사망자의 48%를 차지했다.
건설업계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현재 국회에 사망사고 발생 시 1년 이하 영업정지 또는 매출의 최대 3%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건설안전특별법'이 발의됐는데 특별법 제정보다 빠른 산업안전보건법과 건설산업기본법을 비롯한 시행령 개정을 통해 비슷한 제재 내용이 보다 빠르게 현장에 도입되는 셈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주요 건설사 영업이익률이 한 자릿수대에 머무르는 상황에서 영업이익 5% 이내 과징금은 정말 충격적"이라며 "하한선이 30억원인데 중견, 소규모 업체는 사실상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과징금으로 내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이익을 내기 위해 수주하고 전국에 현장을 많이 돌릴수록 사고 위험도 비례해서 올라가게 된다"며 "앞으로 신규 수주나 입찰 참여에 신중하게 되면 건설산업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장 안전 관리에 보다 충실할 수 있도록 적정 공사 기간, 공사비를 보장하는 내용도 이번 대책에 포함됐지만 건설업계는 아쉽다는 반응이 앞선다.
이번 대책에는 건설기술진흥법과 건설안전특별법을 개정해 공공과 민간 발주자에게 적정 공사비 산정의무를 부여하도록 했다. 또한 적정 공사기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표준도급계약서를 개정해 민간공사 설계서에 공사기간 산정 기준을 포함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건설공사 기간 연장 사유로 폭염 등 기상재해를 추가할 계획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구체적인 수치가 제시된 처벌과 달리 적정 공사비 산정 의무나 공사기간 부여 내용은 '충분한' '적정'이란 식으로 세부 내용이 빠져 있다"며 "생색내기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부산 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 사례를 거론하는 경우도 있었다. 앞서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현대건설은 입찰 조건인 '공사기간 84개월, 2030년 준공'보다 긴 '108개월, 2035년 준공'의 기본설계를 제출했지만 국토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컨소시엄을 탈퇴했다.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가덕신공항 공사에서 현대건설이 빠진 과정도 결국 공사기간을 놓고 발주처와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공공 발주도 이런 실정인데 과연 적정 공기에 대한 현장의 요청이 제대로 받아들여지겠나"라고 반문했다.
해외처럼 발주자에게 실질적인 안전 관리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영국의 '건설업 설계 관리에 관한 제도'(CDM)는 발주자에게 안전 보건 총괄 관리 책임을 지우고, 시공 이전단계부터 안전 보건 관리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해외 사업의 경우 발주자가 안전책임자를 두고 직접 현장 안전보건 관리 체제를 점검하거나 필요하다면 공사비, 공사기간을 탄력적으로 늘려주는 제도가 정착돼 있다"며 "시공사에 대한 처벌 수위만 높일 게 아니라 발주자도 함께 책임지고 안전 관리 노력을 다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패널티는 법령 개정 등을 통해 즉각적으로 반영 가능하지만 적정 공기와 적정 공사비가 실무적으로 반영되기까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우려가 있다"며 "적정 공기와 적정 공사비로, 이미 갖춰진 안전관련 규정을 준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 뒤에, 그러고도 미흡한 현장운영 등으로 산재가 발생하면 강력한 처벌이 가해지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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