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국내 세 번째 번역 출간
이란 혁명 배경으로 가족의 해체 과정·사회 변화상 다뤄
"가족 해체는 혁명 당시 주입된 종교 가치와 법에서 비롯"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이탈리아 '보카치오 문학상'을 수상하고 이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파리누쉬 사니이(76)가 신작 소설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로 한국 독자와 다시 만난다.
소설은 이란 혁명 이후 30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6남매 가족이 만나 벌어지는 열흘간의 이야기다. 소설은 하루하루를 한 장으로,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세월로 쌓인 오해의 벽을 허물고 이해와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풀어냈다.
지난 28일 서면으로 만난 파리누쉬 사니이는 "혁명 이후, 저는 '분열된 가족'이라 부르는 새로운 현상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가족 간 왕래가 잦았던 이전의 모습이 점차 사라졌다고 한다.
이번 소설 역시 이란 혁명 발생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서술한다. 사니이는 이란 혁명을 소재로 쓴 첫 소설 '나의 몫'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어 출간한 두 번째 소설 '목소리를 삼킨 아이'는 이란 여성과 민중의 현실을 속속히 비췄다. 해당 두 작품 모두 한국에 번역 출간됐다.
이란 혁명(1978~1979)은 입헌군주제였던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슬람 종교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한 혁명이다. 혁명의 주된 원인은 팔라비 국왕의 서구화 정책, 사회적 불평등, 대규모 실업, 정치적 억압, 서방 세력의 지원에 대한 국민적 반감 등이 배경이 됐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민·이주자가 발생했다. 연장선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사니이는 더불어 가까운 가족 내에서도 균열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는 "대규모 이주가 이어지면서 가족은 흩어졌고, 30년 뒤에는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하게 됐다"며 변화된 문화를 전했다.
이처럼 가족 해체의 원인, 개인주의 확산 등 근대화된 문화의 배경을 이란 혁명으로 규명하며, 혁명이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가족 관계에 미친 영향을 묘사한다. 다만 최근 이란 사회에 이민 현상이 번지고, 그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사니이는 "시대의 변화는 가족 내 관계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서도 "혁명이 일어났던 당시에는 사회·기술적 변화와 달리, 가족 해체는 강제적으로 주입된 종교적 가치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엄격한 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규모 이주로 어떤 구성원은 부와 안락함을 누리는 한편, 이와 반대되는 구성원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며 이를 통해 거리감이 발생하고 균열의 틈이 생기게 됐다. 그는 "각 가족과 개인이 서로 다른 신념과 정치·사회적 성향을 지닌 이란인들의 단면을 보여주고, 모두가 혁명 이전의 전통적 가치에서 멀어진 시대의 흐름을 상징한다"며 혁명으로 바뀐 사회상을 설명했다.
특히 사니이는 소설 속 6인의 등장인물 중 '어머니'의 역할에 주목했다. 그는 "혁명 이전에 번영을 누렸던 가족부터 극단적인 종교적 가치 소에서 살아온 가족까지,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여러 집단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면서 "이 구성원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공유되는 존재 '어머니'를 통해서 가족을 하나로 이으려 했다"고 전했다.
소설의 전개는 이란 접경의 바닷가 작은 도시에서 모인 가족이 각자의 세월 동안 일을 독백으로 말하면서 인물의 배경을 접할 수 있는 독특한 방식으로 이어진다.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며 용서를 구하는 과정이 전개된다.
한편, 이란 정부는 사니이의 소설을 지난 소설에 이어 재차 금서로 규정했다.
사니이는 "검열에 굴복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며 "만약 (출간이) 불가능하다면 출간 자체를 중단할 생각"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오랜 시간 우리에게 강요되어 온 자기 검열의 함정에 무의식적으로 빠지지 않도록 더 치열하게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면서 자신을 '떠난 자'라고 했다.
"저는 다른 나라의 시민권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제재하에 있었고, 그로 인해 외부와의 접촉이나 금융 거래가 제한돼 일하는데 큰 제약이 있었습니다."
그처럼 떠난 이들은 유학, 사업, 망명 등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반면, 남은 이들은 두 분류로 나뉘었다. 그는 "문화적, 종교적 신념을 공유하며 정권에 동조하기도 하면서, 수많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활동을 이어가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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