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아의 죽음이 남긴 사명감…'단 1명을 위한' 치료제 연구에 뛰어들다[인터뷰]

기사등록 2025/07/25 06:01:00 최종수정 2025/07/25 14:48:42

채종희 서울대병원 희귀질환센터장 인터뷰

첫 사망환자 마음에 남아 소아근육병 전문가로

희귀질환자 한명 위한 유전자치료제 설계 도전

희귀질환 연구, 단지 소수 아닌 다수를 위한 길

당장 성과 안나도 다른 병 진단·치료 기여 가능

[서울=뉴시스]채종희 서울대병원 희귀질환센터장(임상유전체의학과·소아청소년과 교수)이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현대그룹빌딩 서관 13층 임상유전체의학과 회의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2025.07.24.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레지던트 1년차 시절 채종희 서울대병원 희귀질환센터장(임상유전체의학과·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첫 사망 환자를 경험했다. 척수성 근위축증(SMA) 환아가 근육 조직검사를 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 것이다. 진료 중 처음 겪은 ‘모탈리티 케이스’(mortality case)는 젊은 의사에게 깊은 충격과 무력감을 안겼고, 그날의 기억은 그를 소아 근육병 전문가로 이끌었다.

채 센터장은 2014년부터 국내 처음으로 첫 SMA 유전자 치료제인 '스핀라자' 글로벌 임상시험 참여를 시작으로 국내 치료제 도입을 위해 노력해 첫 환자의 치료를 시작했고 2022년 8월엔 건강보험이 적용된 SMA 유전자 치환 치료제 ‘졸겐스마’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생후 4개월 환아에게 투여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임상유전체의학과를 비롯한 국내 우수 연구진들과 팀을 이루어 단 한 명의 극희귀질환 환자를 위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한 명의 희귀질환 환자를 위한 유전자 치료제를 설계하는 ‘N-of-1 trial’(앤 오브 원 트라이얼) 연구 과제에 지원한 것이다. 이 연구는 한 명의 희귀질환 환자의 병적 유전 변이를 표적해 치료제를 개발하고 그 기능을 복구시켜 실제 약물의 임상 효과를 관찰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치료 전략을 수립하는 일종의 초정밀 의학이다.

채 센터장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현대그룹빌딩 서관 13층 임상유전체의학과 회의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통해 “개인적으로 매우 의미가 큰 도전"이라면서 "레지던트 1년차 때 희귀질환을 진단을 하고도 아기를 치료할 수 없었던 무력감이 아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마음에 깊이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희귀질환은 7000~8000종에 달한다. 유전체의학의 발전으로 진단률이 매우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환자들이 여전히 병명을 알지 못한 채 진단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채 센터장의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은 일주일에 200명 가량에 달한다. 환자가 몰려들다 보니 점심도 거른 채 진료를 이어가는 날이 많다. 낮에는 환자 진료만으로도 빠듯하다 보니 연구는 주로 밤에 이뤄진다.

채 센터장은 희귀질환 연구가 단지 소수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결국 다수를 위한 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정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이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기술이 전혀 다른 질환의 치료나 진단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아주 어려운 시험을 단번에 100점 받기 어려운 것처럼 오랜 시간의 인내와 경험치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채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희귀질환 진료 중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희귀난치질환을 보는 의사가 많지 않다 보니 하루종일 환자를 80~90명 진료하고 나면 거의 기절할 정도로 힘듭니다. 게다가 희귀 질환은 환자마다 증상이 나타나는 장기가 다르고, 여러 장기에 걸쳐 증상이 발생할 수 있어서 진단과 치료를 위해 머리, 심장, 콩팥, 말초 신경 등 다양한 부위를 모두 살펴야 하죠. 특히 소아 희귀질환은 종류는 많은 반면 환자 수 자체가 적어 환자들의 부모들이 정보를 접하기가 어렵다보니 짧은 진료시간에 환자나 부모들에게 충분히 설명할 수 없어서 의사인 저도 안타깝습니다."

 -기억에 남는 환자나 보호자가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진단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고, 진단을 해도 아이가 점점 악화되는 모습을 지켜보면 의료진 입장에서도 굉장히 무력해집니다. 그런데 무력감을 조금씩 내려놓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근육병 환아의 어머님이 2년 만에 병원을 찾아오셨는데, 1년 전 호흡근 약화의 합병증으로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선생님과 함께 최선을 다해 돌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지금은 치료제가 없어서 힘들어도 잘 관리하면서 버텨보자, 언젠가 치료제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부터 지금 치료를 못하더라도 연구를 해야 하며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의 곁에 있어 주자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진료하게 됐습니다."

-희귀질환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희귀질환 연구와 진단, 치료를 지속해올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가요?

"소아신경을 전공했는데요. 걷는 게 이상하거나 걷지 못하는 아기들을 보면서 근육병을 의심해 조직검사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근육병과 유사한 뇌 발달 질환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근육에 이상이 없는데 아이가 걷지 못하면 조직검사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유전자 분석을 시작했고, 그 결과 근육병 뿐 아니라 뇌발달의 이상을 비롯한 많은 유전자 질환들이 그 원인임을 알게 됐습니다. 진단이 되지 않는 근육병, 그리고 진단을 알 수 없는 많은 발달이상 환자 사례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미진단 희귀질환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미진단 희귀질환 연구는 스스로 '모르는 게 많다'는 겸손함에서 출발합니다. 저도 늘 팀원들에게 '네 생각은 어떻냐'고 묻습니다. 특히 권역별 희귀질환 중앙지원센터장을 하면서도 느낀 것은 희귀질환은 오케스트라처럼 각 분야 전문가들의 협업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각자 독보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를 내려놓고 조화를 이루는 자세가 중요하죠."

[서울=뉴시스]꿈을 이루어 DREAM 코너에 소개된 환자와 보호자,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 의료진.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2025.05.02. photo@newsis.com.
-국내에서 졸겐스마를 처음으로 투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희귀질환 환자 한 명만을 위한 유전자 치료제 개발 플랫폼 연구 과제 공모에도 도전하셨다고요.

"N of 1 임상시험” (한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맞춤형 임상시험)이라고 합니다. 저희 팀 모두가 밤을 새며 제안서를 썼습니다. 이런 임상은 유전자와 그 변이를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유전자 염기서열 치환이 가능한 해당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찾아내는 것 자체가 어렵고, 그 아이를 위해 유전자 치료제를 맞춤 설계해야 하죠. 그런데 전 세계에서는 이런 시도들이 몇 년 전부터 실제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보통 10년이 걸리지만 이마저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어 투자 대비 효율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희귀질환 연구를 오래 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나온 성과들이 다른 질환에 응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생활을 한 번 살펴볼께요. 과거 둥근 문고리는 관절염 환자나 손 사용이 불편한 환자들은 사용이 어려웠죠. 그런데 아래로 내리는 레버형 손잡이가 등장하면서 모두가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희귀질환 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수의 특정 희귀질환을 위한 연구가 오래 걸리고 또 치료제 개발이 실패하더라도 그 연구는 다른 흔한 병들의 진단과 치료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신생아 선별검사의 중요성은 어떻게 보시나요?

"치료 가능한 질환 중심으로 신생아 선별검사를 확대해야 합니다. 고가치료약제 사용이 가능하게 된 SMA 의 경우도 증상이 없는 신생아 시기에 발견해야 합니다. 21억 원짜리 치료제를 쓰더라도 이미 증상이 발현되면 아이는 완전히 정상 운동발달을 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선별검사를 하면 10명 중 9명은 정상적으로 걸어 다닐 수 있습니다. 또 유전자 검사로 진행하는 신생아 선별검사는 여러가지 윤리적 문제를 고려해야 하고 의학적으로 개입이 가능해서 환자의 발생을 막을 수 있거나 치료가 가능한 병에 국한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세계적으로 많은 전문가들의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또 그 나라의 의료환경도 고려해야 하고 인종적 차이, 의료문화의 차이 등을 고민해서 오랜 동안의 시범연구와 전문가들 간의 협의, 신중한 논의 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필수의료 기피 문제와 관련해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의료는 어떤 분야이던 모두 필수입니다. 소위 인기과라고 부르는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도 모두 필수 의료이지요. 사고를 당해서 성형외과의 기능적 복원이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성형외과영역이지만 필수 분야입니다. 다만 여러가지 이유로 기피분야가 생기는 겁니다. 저는 필수의료라는 말보다는 기피 분야가 있다고 말하는게 더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그 기피분야를 선택해 그 가치를 위해 헌신해 온 의사들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꺾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의정사태 전 한 소아과 전공의가 '낙수과'(필수의료 의사들이 정부가 언급한 '낙수 효과', 즉 의대 정원 확대로 기피과에 의사 유입이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에 빗댄 말)라는 얘기를 듣고 펑펑 운적이 있어요. 어려운 시험과목(기피과)을 선택하고 점수가 낮다고 해서 그 사람의 학업능력이 떨어진다고 보기 어려운 것처럼, 기피과에 헌신해서 노력해 왔는데 가치를 인정받지도 못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과도하게 지운다면 과연 누가 기피과를 선택할까요? 의사도 사람입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불가항력의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윤리적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겠지만 의료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보호해주는 제도와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또 수가 인상은 인력 확대와 더 좋은 의료자원 확보를 통한 의료의 질 향상에 쓰이는 것이지, 대학병원 교수나 의사의 월급을 올리는 데 쓰여지지 않습니다. 국민들이 이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이 희귀질환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기를 바라시나요?

"희귀질환은 대부분 암 등의 중증질환과 달리 관련 정보가 매우 부족해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더 고통스럽습니다. 현재 치료제가 있는 희귀질환은 5~10% 정도에 불과하죠. 환자들과 가족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누구든지 희귀질환을 앓을 수 있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들도 '내가 그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희귀질환과)함께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공감, 희귀질환 극복을 위해 쓰이는 치료비, 연구 자원 등에 대한 가치를 다시 생각하는 마음 등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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