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하종민 기자 = 12·3 비상계엄 사태의 주인공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될 수 있었다. 누가 뭐래도 헌정사 최초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고, 집행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공수처가 놓쳤다. 윤석열 대통령의 반발에 부딪힌 탓이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청구했다. 공수처가 청구한 영장 중 2%만이 서울중앙지법이 아닌 법원에 청구됐던 것을 고려할 때 괜한 논란 거리를 만들어 윤 대통령측의 시비 빌미를 줬다. 공수처에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의 공소장이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될 예정이었던 만큼 괜히 시비 거리를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것도 의욕만 앞선 판단 착오였다. 수사권 조정으로 일찍이 사라진, 경찰이 청구한 영장에 대한 형식적 수사지휘권을 직접 활용하겠다고 주장하며 경찰에 체포영장 집행을 일임했다. 법조계는 물론 경찰에서도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자 불과 반나절만에 자신들의 입장을 철회했다.
정교하지 못한 공수처 수사에 국민들은 역량에 의구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헌정사 최초라는 기록을 위해 통례를 깨고 영장 청구 법원을 서부지법으로 선정한 것은 신중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또 내란죄 입증에 논란의 여지를 준 것은 자칫 '윤 대통령 내란 수괴 사건' 수사에 조금이라도 불신을 줄 수 있어서다.
피의자들은 공수처의 이런 허점을 파고 들었다. '공수처장과 서부지법 판사가 친하다'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다' 등의 주장을 통해 국민들의 시선을 돌려 놓았다. '내란죄 혐의' 자체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불법 수사'를 주장하며 공수처·검찰·법원 판단 전체를 부정하고 있다. 공수처의 미숙한 처신이 수사기관의 불신을 야기하는 칼날이 될 수 있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수처가 헌정사 첫 대통령 체포·구속을 해낸 주인공이 되기엔 부족하다는 평가다. 수사 과정에서 보여준 역량 탓이다. 법원에서 진행될 윤 대통령 내란 혐의 재판에서 공소장을 쓴 검찰이 활약한다면 주인공은 볼 것도 없을 것이다.
이 국면에서 주인공을 자처하던 공수처가 할 수 있는 일은 공소유지에 최대한 협조하는 일이다. 다만 그마저도 법에 근거가 없다. 결국 임박한 평가의 시간 앞에 겸허히 결과를 기다리는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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