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인가, 과실인가…도봉구 성탄절 화재, '방화' 논란 속 1년

기사등록 2024/12/22 07:00:00 최종수정 2024/12/23 12:36:44

화마가 앗아간 아들…방학동 아파트 화재 1년, 유족은 절규

아들은 최초 신고자…이웃 대피 도왔지만 불길 못 빠져나와

피고인, 1심 판결에 항소…유족, 항소 소식에 또 한 번 눈물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26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 소재 아파트 단지에 지난 25일 새벽 발생한 화재로 그을음이 생겨있다. 이 사고로 아파트 주민 2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2023.12.26. mangusta@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올해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지만 임상묵(67·가명)씨의 시간은 여전히 지난해 성탄절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12월25일 새벽, 아파트를 뒤덮은 화마는 상묵씨의 아들 임현기(38·가명)씨를 집어삼켰다. 상묵씨는 최근 성큼 다가온 '그날'에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네 가족이 35년을 동고동락한 동네에서 큰아들 또래의 청년을 볼 때면 목젖까지 차오르는 아들 이름을 수없이 삼킨다. 그럴 때면 상묵씨는 숨이 턱턱 막혀 길가에 잠시 멈춰 서서 심호흡을 해야만 한다.

상묵씨는 한동안 친척들과 지인에게도 아들의 소식을 알리지 못했다. 그의 얼굴은 이미 고통으로 일그러져있었다. 텅 빈 두 눈은 아들을 떠올리며 질끈 감았다 뜰 때면 눈물이 맺혔다.

지난해 성탄절 악몽은 서울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 3층 작은방에서 시작했다. 이날 새벽 시작한 불길은 순식간에 10층 임씨 가족을 덮쳤다.

아들을 잃은 상처는 부부를 생지옥에 가뒀다. 극심한 우울에 시달린 임씨 부부는 얼마 전부터 검찰에서 소개받은 심리 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 상목씨는 "평소에도 아들은 나를 술친구라고 했다"며 아들의 빈자리를 떨쳐내지 못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내 보물을 빼앗긴 겁니다. 잠들기 전이면 '심정지가 와서 네가 날 그냥 데려갔으면 좋겠다. 이렇게 살면 뭐 하냐' 이렇게 아들에게 하소연을 해요." 상묵씨는 털어놨다.

아들 현기씨는 최초 신고자였다. 이른 새벽 현관을 나선 현기씨는 불길을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다. 부모님과 남동생을 먼저 대피시킨 그는 분주히 계단을 오르며 이웃에게 화재 사실을 알렸다. 현기씨 손에는 마지막까지 휴대전화가 들려있었다.

2분도 채 되지 않아 현기씨는 새까만 연기 속으로 사라졌고, 대형 비극은 결국 사상자 29명을 내고 끝이 났다.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26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 소재 아파트 단지에서 경찰, 소방 관계자들이 화재사고 현장 감식을 준비하고 있다. 2023.12.26. mangusta@newsis.com

시작은 3층 주민 김모(78)씨의 담배꽁초였다. 김씨는 방 안에서 바둑 영상을 보며 7시간 동안 흡연을 하다가 불씨를 완전히 끄지 않고 방에서 나섰다. 화재가 동 전체로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김씨는 아무런 조치 없이 거실 창문을 통해 탈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에서 검찰은 아파트 방화문이 상시 개방돼 있었던 데다 화재 당시 김씨가 현관문과 방문을 연 점이 피해를 키웠다고 봤다.

지난 9월, 1심 재판부는 검찰의 구형을 그대로 받아들여 김씨에게 금고 5년을 선고했다. 줄곧 무죄를 주장해 왔던 김씨는 전기 발화에 따른 화재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며 항소했다. 유족을 향한 배상이나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었다.

상묵씨는 최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항소 소식에 이해하기 어렵다며 비참한 심경이라고 전했다.

당초 유족들은 '방화' 혐의가 적용되길 희망했지만 김씨는 중실화와 중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받았다.

김씨가 고의성을 가지고 불을 질렀다는 점을 증명하기 어려운 탓이다. 실화죄는 과실로 화재를 낸 경우 성립하는 범죄로 고의로 불을 지르는 방화죄와는 구분된다.

한 검찰 관계자는 1심 판결과 관련해 실제 방화일 가능성이 있더라도 화재감식기법 등을 이용해도 이를 입증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도 명확한 증거 없이는 방화 혐의를 증명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장현경 법무법인 에스제이파트너스 변호사는 "(방화 혐의는) 고의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단순 과실인지 건물 자체의 하자 때문인 건지 원칙적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봤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 교수는 "방화 혐의 적용을 위해서는 폐쇄회로(CC)TV나 목격자를 통해 확실한 객관적 입증이 필요하다"면서 "입증이 되지 않을 경우 통상 최대 중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목격자나 영상 자료의 중요성을 되짚으며 "방화 중에서도 고의성이 있다거나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살해를 할 의도가 있는지와 관련한 부분들을 입증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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