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과 흰수염이 성성한,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는 뮤지컬을 보기 위해 한 공연장을 찾았다가 울분을 토했다. 다리가 불편한 노인은 공연 시작 전부터 상당히 난감해 하던 참이었다. 좌석 스무개가 붙어있는 한 중간에 앉기 위해 이미 자리를 찾은 다른 관객들을 헤치고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인터미션 때 다시 그 상황을 반복해야 하자 급기야 욕설을 내뱉은 것이다.
그를 '진상 고객'으로 간주한 공연장 직원은 앵무새 같은 안내만 계속했고, 큰 소리가 나자 대체로 거동에 문제가 없어 보이는 젊은 관객들의 눈초리는 곱지 않았다.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자리를 찾아 가시라는 볼멘소리도 들렸다.
관람 환경의 열악함과, '내가 비싼 돈을 냈으니 그만한 대접을 받아야 옳다'는 노인의 미성숙한 태도가 합쳐지면서 생긴 해프닝이다.
최대한 많은 관람객을 받을 수 있도록 공연장은 대체로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하게 좌석을 배치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작은 소리나 움직임도 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할 소지가 크다.
그래서 몇몇 공연장에서는 "허리와 등을 등받이에 붙이고 관람을 해 달라"는 등의 안내를 하기도 한다. 존립 자체가 힘든 대학로 소극장은 그렇다 치지만 VIP 좌석이 10만원대 중후반을 호가하는 대극장에서 이런 멘트를 들을 땐 자연스레 물음표가 그려진다.
"우리 공연장은 단차를 충분하게 확보하지 않아서 앞 사람이 허리를 숙이면 무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열악한 구조입니다"라는 말을 돌려 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자세를 고정하고 시체처럼 숨도 쉬지 말라는 의미의 '시체관극'도 이 같은 물리적 한계가 시발점이 됐을 것이다. 흥이 나는 뮤지컬을 보면서도 들썩임을 최대한 자제해야 하고, 패딩 점퍼는 부스럭 소리가 나니 민폐로 여겨질 만큼 공연 문화는 엄숙하고 경직된 편이다.
공연장의 하드웨어만 탓할 것도 아니다. 언제 지어졌느냐, 어떤 목적으로 지었느냐에 따라 극장 컨디션은 천차만별이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관객을 다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관람 태도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 공연 시간에도 휴대폰을 보거나, 옆 사람과 잡담을 나누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처럼 공연이 익숙하지 않은 미성숙한 관람객들의 '관크'(관객 크리티컬의 준말. 다른 이들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는 꾸준히 문제가 돼 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공연장 관계자들도 난감하다. 관객들 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매뉴얼을 만들어 놓긴 했지만 심지어 옆 사람의 냄새 때문에 힘들다는 민원까지 들어와 제지와 주의도 무의미해질 때가 많다고 한다. 현재 공연시장은 뮤지컬 열기로 뜨겁다. 세계에 드높인 K문화의 힘은 결국 관객의 힘이기도 하다. 여전한 숙제 같은 성숙한 관람문화가 정착되어야 할 이유다.
◎공감언론 뉴시스 ashley85@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