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시스]광주전남취재본부 = 부푼 희망을 안고 출발했던 2024년 갑진년 청용의 해가 민주화 이후 사상 초유의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저물어가고 있다. 희망과 좌절의 연속이었으나 1980년 군부 계엄의 총칼을 이겨낸 광주·전남 시·도민들은 민주·인권·평화의 오월정신으로 희망을 일궈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일당독점 구도의 광주·전남 정치권은 4월 총선과 10월 재선거에서 조국혁신당의 돌풍으로 민주당의 아성이 흔들렸다. 광주·전남의 딸 한강 작가가 5·18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KIA타이거즈는 V12승 달성으로 시·도민들에게 자긍심을 안겨줬다. 목포대와 순천대 통합으로 숙원이었던 전남 국립의과대학 신설에 청신호가 켜진 것도 큰 성과다.
하지만 의과대학 정원에 따른 의정 갈등의 여파로 지역의료 위기가 가중됐고, 광주 민간·군공항 이전도 갈등만 지속한 채 제자리에 머물렀다. 국가 기간산업인 석유화학 제조 부진으로 여수국가산단이 휘청거리고 미분양 속출에 지역 건설업계 부도도 잇따랐다. 친환경 농법의 대표였던 왕우렁이 개체 수 증가로 농업 피해가 확산됐고, 마세라티 뺑소니와 순천 여고생 묻지마 살인 등 강력사건에 시·도민들이 공분했다. 뉴시스가 올해 광주·전남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계엄·탄핵 정국에 광주·전남 시·도민 오월정신 빛났다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연말 광주·전남의 민심이 들끓었다. 44년 전 신군부의 비상계엄 전국 확대에 맞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피 흘려 싸운 5·18민주화운동 정신은 이번 헌정 위기에도 어김없이 되살아났다. 계엄 선포 직후 광주시는 시민사회단체 등과 '헌법 수호 비상계엄 무효선언 연석회의'를 열었고, 전남도도 비상 간부회의를 소집한 뒤 도지사가 계엄 철회를 촉구했다. 지역 각계각층에서도 위법 계엄을 잇따라 규탄했다.
계엄 해제 당일인 4일부터는 광주·전남 시도민들이 연일 광장에 나와 한목소리로 헌정질서 회복을 염원했다. 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내란 정황이 드러나 수사가 본격화되자 광주시민들은 매일 밤 '최후항쟁지' 5·18민주광장에 모여 내란죄 처벌과 윤 대통령 퇴진에 목소리를 모았다. 목포와 여수·순천 등 전남 곳곳에서도 헌정질서 파괴에 대한 규탄 목소리가 높게 일었다. 탄핵소추안 재표결 당일인 14일에는 광주 금남로에만 2만명 넘는 시민들이 모여 준엄한 민심의 뜻을 표현했다. 연일 집회 과정에서 커피·간식 선결제, 주먹밥·떡국 무료 나눔 등이 이어져 연대의 '오월 대동세상'을 재현, 시민 의식도 빛났다.
◆총선·재선거 혼쭐난 민주당…조국혁신당 돌풍
'정권심판론' 태풍이 제22대 총선을 휩쓸면서 광주·전남은 이변 없이 더불어민주당이 18석 전석을 석권했다. 하지만 지역 유권자의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 전략적 교차투표가 현실로 나타나 민주당의 아성이 흔들렸다. 광주와 전남의 현역의원 물갈이 폭은 66.7%로 전체 18명 중 11명이 초선이다. 5선에 전남도지사, 국무총리, 민주당 대표를 지낸 이낙연 새로운미래 대표도 광주 광산을에서 낙선했다.
비례대표 투표율이 광주는 조국혁신당 47.72%, 더불어민주연합 36.26%로 조국혁신당이 11.46%포인트 앞섰다. 전남도 조국혁신당이 43.97%로 39.88%에 그친 더불어민주연합보다 4.09%포인트 높았다. 10월16일 치러진 영광·곡성군수 재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의 선전에 가까스로 체면을 유지해 향후 지방선거 정당 구도 변화가 주목된다.
◆광주 태생 한강 노벨문학상 최초 수상…5·18 재조명
5·18을 소재로 작품을 펴낸 광주 출신 한강 작가가 한국 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아 전 세계에서 오월정신이 재조명됐다. 광주 북구 중흥동에서 자란 한 작가는 장흥 출신 부친 한승원 작가에 이어 2대째 문인의 길을 걷고 있다. 고향에서 일어난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다룬 대표작 '소년이 온다'를 통해 오월의 민주·인권·평화 정신을 세계문학계에 보편적인 정신으로 승화시켰다. 책 속의 주인공 '동호'는 5·18 당시 시민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며 계엄군에 맞서 투쟁한 고 문재학 열사가 투영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국가폭력을 조명한 한 작가의 작품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가했다.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광주시민과 전남도민 사이에서 '한강 열풍'이 불면서 서점과 도서관에서는 한 작가의 저서가 동이 났다. 광주시와 전남도도 수상 기념 행사와 축하 조형물을 마련했다.
◆목포대·순천대 통합 합의…전남 첫 의대 청신호
전남 첫 의과대학 신설의 마중물이자 최대 난제였던 국립 목포대와 국립 순천대 통합이 전격 합의에 이르면서 대학 간 통합과 이를 전제로 한 통합의대 신설이 가시화되고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의대가 없는 전남의 의료 완결성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인 데다 정부의 1도 1국립대 정책기조에 맞춰 국립대 간 통합에 전격 합의하면서 통합의대 신설의 필요충분조건까지 갖춰졌다.
의대 증원과 별개로 전국 최악의 의료사각 해소 차원에서 2026년 개교와 첫 신입생 배정으로 30여 년 이어져온 오랜 숙원이 풀릴지 관심이다. 이와 맞물려 2026년 3월 통합대 출범을 선언한 목포대와 순천대의 통합 합의 후속 조치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KIA 때문에 산다” 타이거즈 프로야구 V12승 쾌거
"KIA 없이는 못살아∼ KIA 없이는 못살아∼ 정말 정말 못살아∼"
거침없는 질주 끝 7년 만에 12번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KIA타이거즈. 형님 리더십 이범호 감독·명불허전 대투수 양현종·'니 땜시 살어야' 슈퍼스타 김도영까지, 타이거즈는 광주시민의 자부심이자 최고의 선물이었다. 야구명가가 부활한 올 한해 광주는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야구장에서, TV 앞에서 목청껏 타이거즈를 응원하던 시민들의 열기는 지난 여름 기록적 폭염보다 더 뜨거웠다. 타이거즈를 향한 사랑은 지역 골목상권의 활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챔피언스필드 상공에 우승 축포를 쏘던 날 "광주는 타이거즈를 품은 참으로 행복한 야구의 도시"라고 광주시는 그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