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주민센터 종사자 등 정신건강 실태조사
응답자 38% "원치 않아도 생각나거나 악몽 꿔"
우울 임상군 비율 11.9%, 불안 임상군은 7.3%
재난대응 유경험자·공공기관 직원 상태 더 나빠
"업무 범위 명확화하고 적절한 보상책 마련해야"
[서울=뉴시스]정유선 기자 = 재난대응업무 종사자들이 5명 중 1명 꼴로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을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8일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지난 9월1일부터 10월14일까지 실시한 '재난대응인력 정신건강 및 소진 실태조사'엔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조사엔 의료기관, 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 주민자치센터, 군·경찰·소방 관련 기관 종사자 등 총 1008명이 참여했다.
전체 응답자 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이 심한 임상군은 183명(18.2%)으로 나타났다. 증상이 심하진 않아도 주의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 이들은 166명(16.5%)이었다.
PTSD와 관련한 질문에서 386명(38.3%)은 '(특정) 경험과 관련한 악몽을 꾸거나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도 경험이 떠오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늘 주변을 경계하게 됐다거나 일상 활동과 멀어진 느낌이 든다는 응답도 각각 30.5%, 26.3%로 적지 않았다.
PTSD 외 다른 지표에서도 재난업무 종사자들이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음이 드러났다.
응답자 중 우울의 정도가 심한 임상군은 120명(11.9%), 불안 정도가 심한 임상군은 74명(7.3%)으로 나타났다. 304명(30.2%)은 정서적 탈진이 높은 상태로 진단됐다.
특히 우울의 경우 동일한 척도로 일반 인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국민건강영양조사(2022년 기준) 결과보다 임상군 비율이 두 배 이상 높게 나왔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우울 임상군 비율은 남성 3.9%, 여성 6.1%였으나 이번 조사에선 남성 8.3%, 여성 12.9%였다.
재난대응인력 중에서도 실제 재난대응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경험이 없는 사람들보다 정신건강이 나쁜 경우가 더 많았다.
PTSD 임상군 비율은 재난대응 유경험자 집단에서 25.0%, 미경험자 집단에서 9.6%로 3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우울 임상군 비율도 유경험자 집단(15.9%)이 미경험자 집단 (6.9%)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정신건강 문제는 민간기관보다 공공기관 종사자들에게서 두드러지는 특징도 나타났다.
PTSD 임상군 비율은 공공기관 종사자에서 23.2%, 민간기관 종사자에서 11.0%였다. 우울 임상군은 전자에서 17.2%, 후자에서 3.9%로 차이가 더 컸다.
전체 응답자 중 243명(24.1%)은 상담 등 심리지원 서비스를 받은 적이 있었고 117명(11.6%)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번아웃(소진)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직의 관리 방안으로는 '명확한 역할 분담 및 과업 범위 설정'을 요구하는 응답이 37.5%로 가장 높았다. 초과 근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30.7%)이나 재난대응업무 매뉴얼 구축(26.4%)도 지원방안으로 꼽혔다.
연구진은 재난대응인력의 정신건강 문제는 재난대응 현장에서 집중력 및 판단력 저하 등 업무 수행 능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초과 근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책을 마련하는 등 조직 차원에서 소진 관리 대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공공기관 종사자들과 관련해선 "실무 및 중간 관리 역할을 맡고 있는 이들에게 과도한 업무 부담과 조직 생활의 스트레스가 집중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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