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지난 10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지난 6일(현지시각) 두 달 만에 기자간담회에 섰다. 간담회의 모든 말을 받아 적고 싶었으나, 내가 선택한 대목은 이 부분이었다. 한강은 그날 밤 명령을 받고 움직여야 했던 "젊은 경찰"과 "젊은 군인"을 보고 이런 걸 느꼈다고 말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무언가를 판단하려 하고 내적 충돌을 느끼면서 최대한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소극적인 것이었겠지만 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선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던 적극적인 행위였다고 생각됩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3일 밤, 국회 앞에서 어렴풋이 느꼈던 것도 이와 비슷한 것이었다. 2년간 서울의 사건·사고를 기록하는 일을 하면서 집회 참가자들을 은근히 내려 깔보는 경찰의 '세모눈'을 숱하게 봤으나, 그날 난 경찰 눈에서 적의라고 할 것들을 쉽게 찾지 못했다.
"누가 들어갈 수 있는지" 묻는 말에 "출입증을 가진 국회 직원들은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할 땐 자신들도 납득된다는 듯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났고, 자정을 20여분 앞둔 시간부터 "아무도 못 들어간다"고 말해야 할 때는 목소리와 함께 어깨도 움츠러들었다. 굳게 닫힌 국회 정문 오른편에 쳐진 천막 사이, 경찰이 배치되지 않은 곳으로 적잖은 시민들이 월담하고 있었으나 못 본 척 '흐린 눈'하는 경찰을 몇몇 보았다.
젊은 군인도 기억난다. 군 당국 마크가 그려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는 군인 세 명이 앉아 있었는데, 특히 뒷좌석에 앉았던 한 군인이 뇌리에 박혀 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시민들과 눈 맞추던 앞 좌석의 두 명과 달리,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 채 고개를 앞 좌석에 처박고 있었다. 왼편에 놓인 탄약캔에는 자물쇠 두 개가 이중으로 시건돼 있었다. 그는 수백명의 시민에 둘러싸여 차가 옴짝달싹 못 하게 됐을 때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피로와 패배감, 자괴감을 느꼈을까.
한국의 위계 조직에는 상명 하복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저항보다는 순응이 더 쉽기 때문이며, 자신이 하는 게 올바른 일인지 성찰하지 않는 이에게도 시간이 일정하게 일상을 떠먹여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복된 복종은 개인의 사유 능력을 갉아먹는다. 자기 행동의 판단 근거를 타인에게서 찾는 수동적인 인간을 만든다.
"국무회의에 따라 발령된 계엄령이고, 계엄법에 따라 사령관이 발동한 포고령이었다."(조지호 경찰청장)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위기 상황에 군인들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한다"(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뭘 어떻게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은 별로 없었고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박안수 전 계엄사령관)
이처럼 무책임하고 수동적이었던, 그래서 역설적으로 국민의 안위를 위협하려 했던 이들로부터 나와 내 주변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공동체를 지키는 것은 한 명의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던" 평범한 이들이었다는 것을, "시민을 터치하지 말라"고 후배를 다독이는 어떤 제복을 입은 시민을, 어슬렁 속도와 움직임 버린 최정예 특전사들을, 부당한 지시에 맞닥뜨렸을 때 무엇이 올바른 판단인지 고뇌했던 군경의 최약자들을 잊지 않아야 한다.
2024년 12월3일과 작별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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