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6개월 만에 두 번째 내한공연
첫 내한공연 당시 2천석 규모…이번엔 약 1만5천석 규모 고척돔
"세이슌노 키라메키노 나카니 / 에이엔노 히카리오 미나이데 / 이츠노 히카 코나니 나테 시루다케 / 세이슌노 하카나사오(青春のきらめきの中に / 永遠の光を見ないで / いつの日か粉になって知るだけ / 青春の儚さを·청춘의 반짝임 속에서 / 영원의 빛을 보면 안 돼 / 언젠가 먼지가 돼 알게 될 뿐 / 청춘의 덧없음을)"('청춘병(Seishun Sick)' 중)
대한민국이 결의로 가득 찼던 14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 받는 J팝 뮤지션인 일본 싱어송라이터 후지이 가제(Fujii Kaze·후지이 카제)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사실이다.
후지이 가제가 1년6개월 만에 펼친 두 번째 내한공연 '베스트 오브 후지이 가제 2020-2024 아시아 투어' 피날레는 청춘의 열병을 치료 받는 동시에 왜 그가 현재 최고의 J팝 뮤지션으로 통하는지를 증명한 자리였다. 국내 J팝 붐이 불어 일본 뮤지션 내한이 잇따른 가운데, 후지이 가제의 콘서트는 올해 J팝 내한공연 중 가장 큰 무대에서 열리는 것이었다.
작년 6월 서울 광운대학교 동해문화예술관 대극장에서 피아노 아시아 투어의 하나로 첫 내한공연을 열었다. 당시 객석 수는 2000석이었다. 이번엔 약 1만5000명(추정)이 함께 했으니 적어도 일곱 배 이상 규모가 커진 셈이다. 한국 팬은 물론 국내 사는 일본인과 영미권 관객들이 다수 몰려들었다. 한국어·일본어·영어 순으로 공지가 안내됐다.
후지이 가제는 지난 8월 24~25일 일본 최대 공연장 닛산 스타디움에서 스타디움 라이브 '필인 굿(feelin' good)'을 열고 14만명을 끌어모을 정도로 넘치는 에너지를 자랑한다. 특히 이날 고척돔 공연은 아시아 투어의 피날레인 만큼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야사시사'를 무반주로 부르며 공연을 시작한 후지이 카제는 이 곡에서 점층적인 구성을 선보이며 웅장한 팝의 미학을 선사했다.
수시로 옷을 갈아 입었는데 '그레이스'를 부르면서 걸치고 나온 꽃무늬 가운이 가장 눈에 띄었다. 중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우아한 자태로 관객들을 향해 "당신은 우아하다"고 말하는 그는 팬들의 자존감을 높여줬다. 이어 청춘에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하며 '청춘병'을 치료해준 데 이어 "전 당신들을 보고 있고 볼 수 있다"며 교감했다.
특히 한국어를 열심히 준비해온 소통의 노력이 돋보였다. "뽀뽀해줘요" "귀여워" "사랑해요" "대박" 등을 수시로 전달했다. 팬들에게 애정도 적극 드러내는 후지이 가제다. '하나'를 부른 뒤 팬들을 향해 "큐트"를 남발하더니, '가든(Garden)'을 부르기 전엔 객석이 "정원(Garden) 같다"고 감탄했다.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후지이 가제는 멀티 연주자 면모도 뽐냈다. '워킹 하드'를 들려주기 직전 능숙한 색소폰 연주를 들려줬다. 직후 하드록 분위기로 '워킹 하드'를 이어가는 전환도 돋보였다. 그가 악기 연주만 능한 건 아니다. 떼창이 터진 '키라리' '댐'을 비롯해 곳곳에서 유연한 춤사위도 보여줬다.
'미치테 유쿠'에선 관객들이 일제히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 은하수가 만들어졌다. '시누노가 이와'는 마음 아프게 감미로웠다.
관객들이 앙코르를 외치는 가운데 끊임없이 손키스를 날리던 후지이 가제는 잠깐의 건반 연주와 무반주로 '사요나라 베이비'로 마침표를 찍었다.
후지이 가제는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면서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주문을 걸었다. "비 더 베스트 버전 오브 유어셀프(be the best version of yourself)"(당신 최고의 모습이 되세요)
세 개의 대형 스크린엔 특히 후지이 가제의 다양한 얼굴 표정 변화가 수시로 잡혔는데, 곡마다 마치 배우처럼 몰입해서 가창하는 순간순간이 그의 최고 모습이었다. 관객들에게도 그런 에너지가 번질 수밖에 없었다.
청춘이 두려운 건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행복은 모순적이게도 청춘이 한시적이라는 걸 잊게 만든다. 유독 이번 후지이 가제 공연은 홀로 온 이들이 많았다. 삶은 끝내 혼자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다. 그걸 아니까 우리는 이렇게 공연장에서 연대할 수 있다.
청춘을 아득한 삶에 헌납한 대가로 찾아올 고립감은 어쩌면 청춘의 잔상이다. 음악은 그 잔상을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후지이 가제는 그 청춘의 덧없음을 얘기하라면서도 매 순간 몰입하며 최고가 되라고 노래한다. 그는 청춘병을 치유해주는 사랑의 힐러다. 청춘이 양가적이라는 걸 아는 이들에겐 삶은 마냥 벅차거나 두렵지 않고 음미해볼 만하다. 이날 고척돔에 모인 이들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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