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10명 중 4명 꼴로 계엄 후유증 겪어
"자유 박탈될 수 있다는 '예기 불안' 커져"
한 달 넘게 이어지면 전문기관 도움 필요
정신건강복지센터·트라우마센터에서 지원
[서울=뉴시스]정유선 기자 = 비상계엄 사태 후 혼란한 정국이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불안도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학계와 의료계에선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의 정신적 고통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전문가 상담을 받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14일 여론조사 전문회사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1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5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6.2%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트라우마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26.2%는 계엄 직후 고통을 겪다가 해소됐다고 했지만 40.0%는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3일 비상계엄 선포, 4일 해제 후 일주일이 지난 시점까지 적지 않은 이들이 후유증에 시달린 것이다.
경기 남양주에 사는 주부 이모(66)씨는 "계엄을 선포하던 날, 5·18때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된 게 생각나서 온 가족한테 빨리 집에 들어가라고 전화를 돌리고 난리였다"며 "대통령이 직을 내려놓지 않고 당당하게 담화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닌가 자꾸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비상계엄은 해제됐지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진행되는 등 혼돈이 장기화하면서 사회적 불안도 가시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조모(30)씨는 "밤에 자주 깨서 뉴스를 확인하게 된다"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2차 계엄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서 자유를 박탈 당할 수도 있다는 '예기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평소 우울이나 불안장애가 있는 경우 충격이 더 클 수 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진료를 보는 환자 중) 절반 정도는 (최근) 좀 더 불안한 것 같다고 한다"며 "제일 불안을 느끼는 분은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니냐, 큰일 날 것 같다고 호소하기도 한다"고 했다.
현재 국민들이 느끼는 분노와 실망은 대부분 일종의 화병이라 시간이 지나고 혼란이 수습되면 증상이 점점 나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계속 불면증에 시달리고 낮에도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등 일상 생활 유지가 어렵다면 전문 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임 교수는 계엄 상황과 관련해 "반복해서 생각이 나고, 군인·군지역·국회 같은 곳을 피하게 되고, 작은 소리나 자극에도 깜짝 놀라는 등의 증상이 4주 이상 지속되면 전문가 상담을 받는 게 좋다"고 했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안내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 질문지로도 자가진단이 가능하다.
충격을 경험한 뒤 한 달 동안 ▲관련 경험에 관한 악몽을 꾸거나 원치 않게 경험이 떠오른다 ▲경험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 늘 주변을 경계하거나 쉽게 놀란다 ▲일상과 멀어진 느낌이 든다 ▲사건에 죄책감을 느끼거나 자신 또는 타인에 대한 원망을 멈출 수 없다 등 5가지 항목에서 2~3가지 이상이 해당될 경우 추가 검사가 권고된다.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은 각 시군구별로 설치된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상담을 신청한 후 정신건강 전문가에게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보다 심화된 과정이 필요하다면 국가트라우마센터나 권역트라우마센터에서 위기상담을 진행하고, 여기서 고위험군으로 판단되면 치료프로그램 대상이 된다. 이 역시 무료다.
민간기관에서 심리 상담을 받고 싶다면 전국민 마음투자사업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서비스 신청해 대상자로 선정되면 일대일 전문심리상담 8회 받을 수 있는 바우처가 제공된다. 본인부담금은 소득수준에 따라 0~30% 차등 부과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건으로 인해 상담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있다면 적극 지원하라고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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