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법위반 억울한 옥살이…이태영 교사, 44년만에 무죄

기사등록 2024/12/11 15:12:47 최종수정 2024/12/12 16:38:36
[부산=뉴시스] 권태완 기자 = 반공법 위반죄로 억울하게 해직 당했던 이태영(오른쪽)씨가 11일 부산법원종합청사 입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동료들에게 축하를 받고 있다. 2024.12.11. kwon97@newsis.com

[부산=뉴시스]권태완 기자 = 반공법 위반죄로 억울하게 해직 당했던 교사가 44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부산지법 형사5부(부장판사 장기석)는 11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태영(60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씨는 경남의 한 고등학교 독일어 교사로 재직하던 중 방위병 소집 영장을 받고 1980년 2월29일 훈련소에 입소했다.

이씨는 방위 교육대에서 교육훈련을 받던 중 1976~1978년 대학 재학 중 친구들과 대화에서 "반공법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골면 코골이 식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악법으로 폐지돼야 한다"거나 김일성을 찬양하는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게 됐다.

그는 출소한 뒤 교사직에서 해임되고 학원에서 강사를 했지만 공안들이 번번이 찾아와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등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이씨는 교직에 복직하게 됐고 2018년 퇴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실화해위원회(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의 판결문과 제501 보안부대의 내사 자료, 수사 기록, 당시 수사관 등을 대상으로 진술 조사를 했다. 조사결과 이씨는 1980년 2월29일 방위로 입대하기 이전인 1978년 초부터 1978년 9월 중순까지 501보안대의 불법적인 내사를 받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씨는 1980년 3월20~27일 최소 8일 동안 불법 구금됐고 조사받는 동안 범죄사실을 시인하도록 구타와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했던 것으로 진실화해위는 판단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4월 보안사령부(현 국군국방첩사령부)에서 이뤄진 이씨에 대한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 등은 불법적인 수사와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하므로 이씨에게 사과하고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이후 지난 10월 이씨에 대한 재심 개시가 결정됐다. 이어 지난달 20일 열린 이씨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유죄 인정의 근거가 됐던 주요 진술들은 현재 증거로 사용하기 곤란한 사정이 있다"며 "이씨의 발언 내용과 경위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해악을 미칠 구체적인 명백한 위험이 있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고 무죄를 구형했다.

이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직접 말을 할 수가 없어 아내가 최후 진술을 대신 읽었다. 그는 "6·25전쟁 이후 태어나서 지금까지 공산주의를 접해본 적도 없고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다. 말 그대로 저는 순수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경험에 비춰볼 때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은 자의적으로 판단 가능한 반인권적인 조항"이라고 전했다.

그는 "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달라. 억울하다"며 "젊어서부터 꿈꿔온 민주적인 나라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는 1980년 3월20일 제501보안부대에 검거된 뒤 같은 달 27일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약 8일 동안 구속영장 없이 불법 구금됐고 이 기간에 이씨는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채 제501보안부대 소속 수사관들에 의해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부당한 신체구속 이후 이씨의 수사기관과 법정에서의 진술은 임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 이후 이씨는 "무거운 바위를 내려놓은 기분"이라면서 "육신적·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도움 주셔서 어려움을 극복해 냈다.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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