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책임감 엄중 인식…국민께 송구" 자진 사퇴
계엄 사전 모의·동조 의혹…김용현 통화·두둔 발언
10일 탄핵 표결 예정이었으나 이틀 앞 사의 표명
'이태원 참사' 사퇴도 거부했지만, 이번엔 부담 커
전문가 "사의 표명, 면책 행위…잘못된 사고 구조"
탄핵 피했지만 수사 본격화…최장수 불명예 퇴진
2022년 '10·29 이태원 참사' 책임으로 퇴진 압박이 거셌을 때에도 사퇴를 거부했던 그였지만, 이번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은 어느 때보다 정치적 부담이 크게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9일 행안부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전날 입장문을 내고 "국민 여러분을 편하게 모시지 못하고 대통령님을 잘 보좌하지 못한 책임감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국민께 송구한 마음"이라며 "이제 장관의 직을 내려놓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더 이상 국정의 공백과 혼란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이제 한 사람의 평범한 국민으로 돌아가 자유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에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이러한 사의를 윤 대통령에게 표명했으며, 윤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고 행안부는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사의 표명 시점과 재가 시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이번 계엄을 사전에 모의하고 동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전 장관은 비상 계엄이 선포되기 4시간 전인 지난 3일 오후 6시께 KTX 안에서 이번 계엄을 건의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30초 가량 전화를 수신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는 울산에서 외부 일정 도중 서울로 급하게 올라오던 중이었다. 이 전 장관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3일 오후 5시40분께 울산에서 서울행 KTX를 탔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이 전 장관이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소집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 전 장관은 "그 때는 몰랐다, 점심 무렵에 '대통령님과의 일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답했다.
행안부도 "(김 전 장관과의) 통화 내용은 '용산 대통령실로 들어오라'는 것이 전부였다"며 "이 전 장관이 계엄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대통령실에 도착한 이후"라고 했다.
야당은 '충암고 출신들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를 모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김 전 장관과 이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 선후배다. 다만 이 전 장관은 "충암고끼리 모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 전 장관은 아울러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소집 당시 우려를 표명했다고 하면서도, 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통치행위", "헌법상 권한 행사"라고 발언하는 등 사실상 두둔하기도 했다.
이 전 장관은 또 "국회를 제대로 봉쇄했으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이 가능했겠나" "국회의 권한을 막으려고 마음 먹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고 주장해 야당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 전 장관은 '이태원 참사' 당시 대응 부실 책임을 묻는 야당의 사퇴 요구에도 "현재 주어진 위치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 "사퇴만이 책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자진 사퇴를 거부한 바 있다.
결국 지난해 2월8일 이 전 장관에 대한 탄핵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됐지만, 그는 직전까지도 사퇴 요구에 대한 변함 없는 입장을 유지했다.
이후 같은 해 7월 헌법재판소는 이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 심판 청구를 기각했고, 그는 직무에 복귀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퇴 요구는 끊이지 않았고, 이 전 장관은 그 때마다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경우 후폭풍이 워낙 거센 만큼 이 전 장관도 더는 장관직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수사 당국은 윤 대통령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 중이며, 계엄 선포를 건의한 김 전 장관에 대해서는 긴급체포 및 집무실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이 전 장관에 대해서도 전날 긴급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전문가들은 이 전 장관의 사의 표명과 윤 대통령의 수용이 이번 계엄 사태에 대한 일종의 '면책 행위'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의 표명이 책임을 통감한다는 건지, 곤란한 상황을 피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책임을 끝까지 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사의 수용도 '이너 서클' 보호로, 잘못된 사고 구조의 발로"라고 지적했다.
이 전 장관이 자진 사퇴로 탄핵은 피하게 됐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수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장관은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2022년 5월 취임 이후 2년7개월 간 '최장수' 장관으로 일해왔지만, 각종 논란과 비판에 휩싸이며 '불명예 퇴진'이라는 오점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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