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 지난 7월 타계 후 한국서 첫 개인전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초록 연못을 한 동안 보고 있던 남자가 얍 소리와 함께 뛰어 오른다. 그런데. 허공에 그대로 멈췄다. 무언가 잘못되었나 싶은 순간 일렁이는 물결이 알려준다. 화면은 계속되고 있음을. 결국 남자는 물 속에서 알몸으로 나와 다시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옛날 영상 기법으로 촌스럽기도 하지만 보고 난 이후는 달라진다. 물 세례 받은 듯한 정화의 감정이 일렁이는 물결에 반사된 빛과 시간을 의식하게 한다. 흔들흔들…삶이란 순환이라는 것을.
빌 비올라가 1977년 제작한 'The Reflecting Pool'은 그의 트라우마에서 시작됐다. 어린 시절 호수에 빠져 거의 익사 할 뻔한 찰나의 순간에 목격한 수면 아래에서 빛과 아름다움은 이후 그의 작업 세계에 초월적인 차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1979년 선보인 'Moving Stillness: Mount Rainier' 영상은 일렁거림의 극대화를 보여준다.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스크린에 투사 되는 산의 이미지가 화면 바로 아래의 물 웅덩이에 반사되는 구조다. 물 표면의 일렁임에 따라 산의 모습도 함께 흔들린다. 오색 빛깔로 반짝이며 ‘흔들리는 산’의 모습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잠잠해지며 안정을 되찾는다.
정적이고 단단한, 시간의 기념비로서 존재하는 산을 취약하고 불안정한 이미지로 제시한 빌 비올라는 이미지로서의 산이 갖는 안정감의 함정에 대해, 또 한편으로는 시간의 축적이 건네는 안식에 대해 되짚어볼 수 있게 한다.
빌 비올라(Bill Viola). 지난 7월, 73세로 타계한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의 추모전 같은 전시가 국제갤러리에 마련됐다.
국제갤러리에서 네 번째 개인전이자 작고 후 한국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이 전시는 빌 비올라의 명상적인 작업 세계를 다시 보게 한다. 영상 설치 및 영상 작품 7점을 선보인다. 살아있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다. 한 작품 당 10~30분 정도 소요되는 비디오 영상은 연말 연시 성찰의 시간과 묵상할 수 있는 전시로 제격이다.
1951년 뉴욕에서 태어난 빌 비올라는 지난 50여 년간 비디오아트를 현대미술의 주요 장르로 확립하는 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회화와 뉴미디어, 인지심리학, 전자 음악을 수학하고 미국 시러큐스 대학교에서 1973년 실험적 스튜디오(Experimental Studios) 학과의 학사 학위를 받았다.
강렬한 영상 설치 작업으로 널리 알려진 비올라는 영상 기술을 통해 인식, 인지, 자아 성찰의 다양한 방식을 실험해왔다. 자신의 영상을 '주관적 인식의 언어로 기술한 시각적 시(詩) 내지는 우화'라고 표현하기도 한 그는 불교의 선종, 이슬람의 수피교, 기독교의 신비주의와 같은 영적 전통에 기반을 둔 영상 언어를 특징으로 삼아 심도 깊은 휴머니즘과 내면의 초월적인 비전을 감각적으로 구현했다.
2004년 그리스 올림픽에 초청받아 커미션 작업을 선보였고 2014년, 2016년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을 위한 두 점의 작품 'Martyrs (Earth, Air, Fire, Water)'와 'Mary'를 제작했는데, 이는 영국 내 성공회 성당에 최초로 영상 작품이 영구 설치된 사례다. 1989년 맥아더 재단 펠로우십(MacArthur Foundation Fellowship), 1993년 스코히건 훈장(Skowhegan Medal), 2009년 XXI 카탈루냐 국제상(XXI Catalonia International Prize), 2011년 일본 미술 협회의 프레미움 임페리얼(Praemium Imperiale from the Japan Art Association) 등을 포함해 수많은 수상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빌비올라 개인전 'Moving Stillness(움직이는 고요)'전시는 2025년 1월26일까지 열린다. 관람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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