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서 암 발견…수술 위해 병가 문의했지만 거부
근로자 10명 중 9명 "아프면 쉬어야"…법적 의무는 없어
산재는 요양 중 해고 불가…개인 질병은 별도 규정 전무
野, 22대 국회 들어 연 60일 유급 질병휴가 도입법 발의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 직장인 A(35)씨는 올해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에 결절이 보인다는 진단 결과를 받았고, 조직검사를 통해 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진행이 많이 되지는 않아 수술을 받고 잘 관리한다면 완치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회사. 회사에 질병휴직을 1개월 정도 쓸 수 있냐고 문의했더니 개인 연차를 소진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연차휴가로는 수술에 회복까지 턱없이 부족한 터라 사정을 호소해봤지만, 되레 사측에서는 암이라면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고 쉬는 게 어떻겠냐며 사직을 권고해왔다. A씨는 "생계 때문에 회사를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고 병원에서도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고 했는데, 아프다는 이유로 해고하는 건 부당해고가 아니냐"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아파도 학교와 직장은 가야 한다는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2020년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37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91.6%가 '아프면 3~4일 집에서 쉬어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인식과 현실은 별개다. A씨처럼 길게 쉬어야 하는 경우에는 회사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직장갑질119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7.4%는 '연차 휴가와 별개로 아플 때 쓸 수 있는 유급 병가제도가 없다'고 답했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유급 연차휴가에 대해서만 정하고 있을 뿐, 병가에 대해서는 따로 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개별 사업장의 취업규칙 혹은 노사합의가 없다면 사업주 재량에 맡겨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A씨의 경우를 살펴보자. A씨 회사는 따로 질병휴직을 정하고 있지 않다. 또 사업주는 A씨 휴직을 거부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때 A씨가 사측 요구대로 사직처리 된다면 이는 부당해고에 해당할까? 안타깝게도 부당해고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현행 법상 근로자가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 요양을 위해 요양 중인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은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산재 휴직의 경우로, 업무상 인과가 없는 개인 질병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법이 근로자 해고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지만 질병을 얻어 업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 치료 기간이 장기간 소요되는 경우 등에는 해고가 정당하게 인정된다. 즉, 산재가 아니라면 사업주가 장기간 결근을 해야 하는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무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대법원은 1996년 사고를 당해 치료를 위해 질병 휴직을 했다 2~3개월의 추가 휴직을 요구한 택시기사를 해고한 운수회사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당시 법원은 "업무 외 부상으로 인한 휴직은 다른 휴직사유와 달리 그 종결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회사 인사규정에 '2개월 이내 기간 동안만 휴직이 가능하고 7일 이내 복직하지 않을 때는 퇴직처리 한다'고 정하고 있으므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더욱이 A씨의 경우, 회사에 취업규칙에 따로 질병휴직이 없으니 이대로 치료를 위해 출근을 하지 않을 경우 결근으로 보아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이처럼 아파도 쉬지 못하는 근로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에 병가를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상병수당제도와 유급병가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국제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는 제도 도입을 권고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2022년부터 올해까지 시범사업을 통해 2027년부터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이에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3명 의원은 제22대 국회 들어 유급 질병휴가를 연간 60일 범위에서 도입하고, 질병 휴가급여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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