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경보기 출동 100건 중 3건만 '진짜 화재'
온도 변화에 민감…추워지면 오작동 많아져
화재감지기 꺼두는 건물 많아 인명피해 키워
서울 영등포구의 오피스텔에 사는 김모(30)씨는 며칠째 새벽마다 울리는 화재경보에 고통 받고 있다. 김씨는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이 큰 소리로 경보가 울리는데, 오작동인 걸 아니까 아무도 대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기 군포시에 거주하는 장모(30)씨도 "어젯밤에도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아파트가 지은 지 30년이 돼서 그런지 예전에 비해 울리는 횟수가 늘었다"며 "하도 오작동이 많으니까 대피하지 않고 베란다에서 연기가 나는지부터 살핀다. 어젯밤에 경보기가 울렸을 때도 아무도 안 나오더라"고 토로했다.
겨울철에 접어들며 화재경보기 오작동으로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서울의 한 소방관리업체 관계자는 "화재감지기가 온도 변화에 민감해 날씨가 추워지면 오작동이 많아진다"며 "오작동 민원이 많아 건물을 방문 점검하는데, 감지기 자체는 정상 작동하기 때문에 조치할 게 별로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화재경보기로 인한 출동 25만8200건 중 실제 화재가 발생한 건 8775건(3.3%)에 불과했다. 출동으로 이어진 화재경보 100건 중 3건만 진짜 화재였던 셈이다.
소방청 집계에서도 소방시설 오작동으로 인한 출동은 2020년 4만6639건→2021년 8만5449건→2022년 9만5106건→2023년 11만5949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장필준 한국소방시설관리협회 부회장은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 화재 대부분은 소방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경우"라며 "오작동 때문에 화재감지기를 꺼 놓거나 스프링클러가 자동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연결을) 끊어놓은 곳들"이라고 말했다.
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부천 호텔 화재'는 호텔 매니저가 화재경보기를 임의로 정지시키면서 참사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매니저가 화재 발생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경보기를 일단 끈 후, 8층에 올라가 화재를 목격한 뒤에야 재작동시켰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기차 화재로 차량 40대가 전소한 인천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 사고도 관리사무소 직원이 화재 신호를 감지하자마자 스프링클러를 정지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직원은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하면 민원 전화가 빗발쳐 정지 버튼부터 눌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례 모두 관리인이 소방시설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숙박업소에서는 화재경보기가 울리면 투숙객들의 환불 요청이 이어져 평상시에도 장치를 꺼놓는 곳이 수두룩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감지기 오작동 원인은 최저가 입찰 단가를 맞추기 위한 저가 부품 사용, 부실 시공 등이 꼽힌다. 민감도는 높이면서 오작동은 줄이는 기술력이 필요한데, 시공사들이 값싼 제품을 선호해 품질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 부회장은 "시공사들이 건물을 지을 때 소방용품을 구매하는데, 싼 것부터 팔리는 최저가 입찰 구조"라며 "비싸고 품질이 좋은 제품이 있지만 잘 팔리지 않는다. 제조업체들이 기술 개발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싸게 팔지만 경쟁하기 때문에 품질이 발전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소방청은 화재감지기의 성능 기준을 높이는 '감지기의 형식승인 및 제품검사의 기술기준' 고시 개정안이 지난해 통과된 만큼, 오작동 감소를 기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제조업체가 새 기준에 따라 모델을 만들 시간이 필요해서 1년 유예기간을 뒀다. 1년 후부터는 새 기준에 맞게 제품을 출시해야 한다"며 "지금도 시설 점검 때 오작동이 있으면 교체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nam@newsis.com, victory@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