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령상 지원 불가능한 지방이양사업에 국고보조금 줄줄 샜다

기사등록 2024/11/26 10:00:00 최종수정 2024/11/26 11:10:16

감사원, 20개 사업 2520억 보조금 불법 지원 확인…기재부에 통보

애써 따낸 토목·건설시설사업 3.4조원 다 못쓰고 이월·불용

정보시스템 간 연계 미흡, 인건비 등 중복·부정 수령 수두룩

[서울=뉴시스] 변해정 기자 = 혈세로 충당되는 보조금이 지급 금지된 지방이양 사업에 허투루 쓰인 것으로 드러났다.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국회의원실을 통해 숙원사업 보조금 지원을 요구하고 국회 심의과정에서 면밀한 검토 없이 증액 동의가 이뤄진 것이 단초가 됐다. 

토목·건설과 같은 시설사업에 투입한 보조금의 60%는 다 못쓰고 해를 넘겨 이월하거나 불용 처리됐다. 액수로는 최근 5년(2018~2022년)간 3조4000억원에 달한다. 무리한 사업계획과 집행실적 관리 부실 탓이다.

감사원은 26일 이같은 내용의 공익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7월 통일부와 행정안전부, 해양수산부,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11개 부처가 보조사업에 대해 자체 감사한 후 위법·부당 여부와 금액을 확정하기 어려운 286개 의심 사항을 보다 심도 있게 조사해달라며 공익감사를 청구하면서 시작됐다.

국고보조금 규모는 2018년 66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102조3000억원으로 급증해 정부 총지출의 16.0%에 달하지만 줄줄 새는 실정이다.

특히 재원과 기능이 지방에 넘어가 보조금 법령상 지원할 수 없는 사업에 국회 단계에서 증액 반영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번에 감사원이 확인한 지방이양사업만 20개나 된다. 편성된 국비는 2520억원 수준이다. 

연도별로는 2021년 1개(68억원), 2022년 2개(253억원), 2023년 7개(710억원), 2024년 10개(1489억원)이다.

구체적인 편성 경위를 보면 13개 사업은 지자체가 지역 국회의원실을 통해 국고보조금 지원을 요구한 유형이다.

강원도의 '오페라하우스 건립사업'이 대표 사례다. 기재부는 지방이양사업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국고보조금 지원을 반대해오다 도 측의 지속된 요구에 사업 재기획 의사를 확답받고 1000억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구체적 사업계획 없이 명칭만 바꿔 당초 계획대로 공연장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는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자체 예산만으로 추진 중인 울산시 등과 형평성 문제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감사원은 판단하고 있다.

나머지 7개 사업은 민원이 제기되자 의원실이 지자체와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국고보조금 편성을 추진한 유형이었다. 예산안 합의 막바지에 예산이 편성됨에 따라 지방비 확보 가능성과 사업 타당성 등도 제대로 검토되지 못해 정상적인 사업 추진이 어려운 것으로 파악됐다. 2021~2023년 실집행률은 평균 4.73%에 그쳤다.

아산시 사례가 대표적이다. 시는 지역 국회의원실로부터 체육센터 조성사업(총사업비 30억원·국비 9억원) 추진 검토를 요청받자 탕정면 일대가 공공기관 유치 목적으로 지정돼 있고 재정 여력도 부족해 추진이 불가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국회 예산심의 단계에서 국고보조금 지원 필요성이 제기됐고 기재부가 지방이양사업에 해당된다며 반대했지만 결국 예산안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사정 때문에 증액에 동의했다. 이후 시는 정당 현수막 등을 통해 예산 편성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고 현재는 사업 부지와 자체 재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감사원은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국비 지원이 가능한 사업과 불가능한 사업의 구분이 일부 불명확하게 규정돼 자의적으로 해석·운영될 여지가 있는 점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에 기재부에 현행 법을 정비할 것을 통보하고 지방이양사업에 국비가 편성되는 일이 없도록 정부의 증액 동의권을 실효성 있게 행사할 것을 권했다. 국비가 편성된 20개 사업 중 예산이 교부되지 않은 사업에 대해서는 재원과 함께 해당 사업을 지방에 이양한 취지에 맞게 조치하도록 했다.

감사원은 또 토목·건설 등 장기간이 소요되는 국고보조 시설사업의 연도별 예산이 과다 편성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사업부처가 사업 추진절차와 소요 기간 등을 고려한 연차별 수요에 비해 과다한 수준의 예산을 요구했기 때문인데, 일부 부처의 경우 편의상 실제 예산집행 실적이 아닌 하위 보조사업자에게 교부한 실적을 실집행률로 과다계상해 인식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편성된 예산도 집행 실적 고려 없이 보조사업자에 교부해 매년 예산이 집행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었다. 감사원이 파악한 이월·불용 규모는 2018~2022년 5년간 318개 사업 예산(5조7000억원)의 60%인 3조4000억원에 달했다.

감사원은 기재부에 실집행 실적 기준을 명확히 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통보하고, 해수부·환경부·농식품부에는 예산의 과다 요구와 집행 실적 고려 없는 보조금 교부가 없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주의를 줬다.

아울러 보조금시스템과 국가연구개발사업 통합정보시스템이 서로 연계되지 않아 보조사업과 연구개발사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사업자가 동일한 증빙으로 인건비 등을 중복·부정 수령하는 사례도 여럿 적발해 관계 기관에 개선 방안 마련을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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