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푸틴 핵사용 걱정하던 미국
우크라 전쟁 거치며 면역력 키워
핵독트린 개정은 말 뿐인 위협
미·나토와 러 사이 핵균형 불변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각) 새로운 핵독트린을 승인했으나 미국은 핵위협이 속빈 강정이라며 거의 하품을 하는 수준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러시아의 새 핵독트린은 처음으로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은 핵비보유국을 핵으로 공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핵보유국인 미국·영국·프랑스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을 겨냥한 것이다.
또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것을 겨냥해 러시아 주권 및 영토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경우도 핵공격 대상으로 규정했다. 미국이 에이태큼스(ATACMS; 육군전술미사일 체계)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는데 동의한 것을 겨냥한 조치다.
이처럼 러시아는 미국과 서방을 겨냥한 핵위협을 한층 키웠다.
그러나 미 정가에선 러시아의 핵위협을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법무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맷 게이츠 전 하원의원이 성매매 및 마약 연루 혐의로 인준을 통과할 수 있을 지가 최대 관심사다.
미국과 세계는 우크라이나 전쟁 1000일이 되기까지 러시아의 핵위협에 면역력을 키워왔다. 또 핵보유국이 이란, 북한 등 9개국으로 늘어난 탓에 핵사용 위협이 제기돼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조차 소집하지 않는다.
수십 년 전 세계 핵위협 상황을 추적해온 매튜 번 미 하바드대 교수는 “러시아가 단기적으로 핵을 실제로 사용할 위험은 증가하지 않았다. 장기적 핵전쟁 가능성은 조금 늘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가 장거리 무기로 러시아를 공격하도록 허용한 것이 푸틴의 서방에 대한 증오와 공포를 키우고 이는 다시 서방의 공포와 증오를 키울 수 있는 러시아의 대응을 도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반대하면서 전쟁을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푸틴에게는 기회가 되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로 지탱하는 현재의 러시아로선 이루지 못한, 전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서방에 대한 핵위협을 통해 확보하려는 생각이다.
미 국가안보회의(NSC) 뒤 발표한 성명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푸틴의 새 핵 독트린을 비난했으나 경각심은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성명은 러시아의 핵 태세에 변화가 없으며 따라서 미국도 경계 수위를 높일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푸틴이 핵사용 위협을 새롭게 정당화하는 말을 했을 뿐이며 그가 핵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억제력에는 변화가 없다는 의미가 깔린 대응이다.
비핀 나랑 미 MIT대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이 전술핵무기를 언제 어느 곳에 어떤 규모로 배치하든 심각한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여러 번 밝혔다”고 강조했다.
나랑 교수는 “푸틴은 여전히 미국과 전 세계의 반응 및 상황 악화 방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핵 독트린을 개정했어도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재래식 및 핵 대비 태세가 러시아의 핵사용을 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푸틴이 이를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지적했다.
푸틴이 오판할 확률은 매우 낮아 보인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 내내 나토 회원국을 직접 공격하는 것을 피해 왔다. 나토의 참전을 피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2022년 10월 정보기관들이 러시아 장군들이 푸틴이 핵을 사용할 것을 걱정하고 있음을 파악하면서 푸틴이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 적도 있다. 그러나 핵사용은 없었다.
나랑 교수는 “핵사용 한계를 말 만으로 확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견제와 균형에 따른 억제력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다. 핵독트린을 바꾼다고 미국과 나토, 러시아 사이의 핵 균형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러시와와 중국의 위협에 대응해 미국의 핵무기를 늘려야한다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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