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오정우 기자 = 우리사회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강력 범죄자의 신상 공개에 대한 찬성 여론은 높다. 하지만 2010년 도입된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제도’는 여전히 공개 기준이 모호한 점이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민적 분노가 들끓는 흉악범에 대한 신상공개가 늦어지면서 네티즌 수사대가 신상털기에 나서는 촌극까지 벌어지고 있다.
살인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화천 살인' 피의자 육군 중령 양광준씨의 신상이 지난 13일 공개됐다. 잔인한 계획 살인에 이어 범행 사실을 은폐하려 한 혐의를 받는 양씨의 신상정보 공개는 절차를 거쳐 확정되느라 다소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양씨는 이에 반발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 때문에 양씨의 신상 공개가 또 늦춰졌고 격분한 국민들이 양씨 사진 등 신상을 찾아내 먼저 공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피의자 신상 공개를 둘러싼 모호한 기준이 국민들에게 공분을 산 적이 적지 않다. 최근 아파트 이웃 주민을 폭행해 살해한 최성우(28)의 신상은 공개된 반면 그 앞에 발생한 ‘일본도 살인사건’의 피의자 신상은 비공개 결정됐다.
경찰은 ‘일본도 살인사건’의 범인 백모(37)씨가 정신질환이 의심돼 예방 효과가 적고, 피해자 유족에 대한 2차 가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다.
백씨 사건 역시 최씨와 같은 ‘묻지마 살인사건’이었지만 수사기관의 판단에 따라 신상 공개 여부가 갈렸다.
상황이 이렇자 신상 공개의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피의자 신상 공개제도는 경찰청 소속 경찰관을 비롯해 교수·변호사 등 총 7명이 과반으로 찬성하면 특정 강력범죄 사건 피의자의 얼굴·나이·이름이 포함된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개 기준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을 것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권리 보장 및 피의자의 재범 방지·범죄 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는 요건을 충족해야 할 것 등이다.
특히 '범행수단이 얼마나 잔인해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중대한 피해인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이 보완 사안으로 꼽힌다. 사건 별로 신상 공개 결정 기준이 달라져 일관성이 유지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재범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도 미흡하다는 평가다.
피의자의 재범 가능성은 한국형 위험성 평가 도구(Korean Offender Risk Assesment System-Genreral)로 수사·재판 단계에서 검증하게 된다. 이미 범행이 벌어진 뒤 '재범 가능성이 높았다'고 분석하는 셈이다. 이 기준은 사후약방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흉악 범죄의 사후 분석보다는 사전 차단이 우선돼야 한다.
강력 범죄자 신상 공개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재범 방지를 위한 구체적 대안을 마련해 우리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는 흉악 범죄 증가를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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