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성진은 마음 어디인가 뒤틀려 있다.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과 그 성공을 위해 할 수밖에 없는 일들 모두를 다 파괴해버리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는 듯하다. 약혼자 수연의 갑작스러운 잠적은 성진의 두 가지 욕망을 까발린다. 조력자 수연 없이도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 능력을 인정 받을 수 있게 된데다가 성공을 위해 필요한 존재이긴 해도 사랑하지는 않는 수연을 배신해버리는 관계를 맺어볼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이제 성진은 이 욕구들을 채우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그리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것만 같다.

"참 의뭉한 사람이죠. 만약에 제가 이런 사람을 사회에서 만나면 절대 친해지지 않을 겁니다."

배우 송승헌(48)은 영화 '히든 페이스'(11월20일 공개) 성진을 이렇게 표현했다. 1996년 데뷔 이후 멋지다, 잘생겼다, 반듯하다, 깍듯하다 같은 말로 수식된 그가 바로 이 비뚤어진 인간이 돼 나타났다. 언뜻 상상이 안 되는 조합인데, 감정을 안으로 꾹꾹 눌러 담아 생기 없이 표정이 사라진 송승헌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미지의 불균형 같은 건 안중에 들어오지 않는다. 송승헌은 그 이상한 성진 같다.

"기존에 제가 연기했던 인물들을 떠올려 보면 성진은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죠. 제가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처음입니다. 그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제 이미지와 다른 사람을 연기할 때 관객 반응을 기대해보는 거죠. 성진은 불쾌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2011년 나온 동명 콜롬비아 영화가 원작인 '히든 페이스'는 세 남녀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그린다. 지휘자로 성공하고 싶지만 클래식 음악계에 기반이라곤 없어서 결국 돈 많은 집 여자를 선택한 성진과 그런 성진을 마치 트로피처럼 여기며 그를 소유하려 하는 수연. 결혼을 앞둔 두 사람 관계는 삐그덕 거리고 어느 날 수연이 영상 편지 하나를 남겨 놓은 채 사라진다. 그리고는 수연이 사라지면서 오케스트라에 부족하게 된 첼로 한 자리에 수연의 후배가 추천을 받아 들어오게 된다. 성진과 수연의 관계가 급격히 가까워지고 세 사람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이번 작품에서 송승헌에겐 두 가지 과제가 있었다. 하나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감정을 최대한 숨기고 성진이라는 인물을 표현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지휘자라는 직업인으로서 능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물론 어떤 대목에선 성진의 감정을 더 폭발적으로 드러내게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성진은 그런 캐릭터가 아니죠.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이라 아닌 겁니다. 욕망을 꼭꼭 감추고 있는 사람이죠. 그렇다고 감정이 없는 건 아니니까 적당히 미묘하게 그 마음을 드러내야 했어요. 그래서 쉽지 않았죠. 지휘를 연기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처음엔 쉽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성진이 지휘하는 장면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라이브로 연주를 했습니다. 제 지휘에 맞춰 연주를 한 거죠. 제가 실수를 하면 음악이 이상해진다는 걸 알게 되니까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습니다."

'히든 페이스'는 송승헌이 '대장 김창수'(2017) 이후 7년만에 내놓은 한국영화다. 연출을 맡은 김대우 감독에겐 '인간중독'(2014) 이후 10년만에 발표한 새 영화다. 송승헌과 김 감독은 '인간중독'에서 이미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고, 이번이 두 번째다. 송승헌은 전작에서도 전에 보여준 적 없는 연기 파격으로 주목을 받았었다. 이번에도 그는 김 감독 영화에서 다시 한 번 새로운 얼굴을 내보이고 있다. 송승헌은 "인간 욕망을 드러내는 감독님 영화의 팬"이라고 했다.

"'인간중독'은 제 연기 인생의 전환전이 돼 준 작품입니다. 그런 기회를 준 감독님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워낙 감독님 영화를 좋아했어요. '음란서생' '방자전' 연출한 작품 다 좋아했고, '정사' '송어' '스캔들' 등 각본을 쓴 영화 역시 좋아했습니다. 감독님 영화는 재밌잖아요. 안 할 이유가 없죠. 이번에도 촬영 현장이 너무나 즐거웠어요."

영화 개봉을 앞두고 송승헌은 TV·유튜브 등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이전보다 훨씬 여유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영화·드라마가 아닌 다른 자리에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다가 간혹 예능에 나오게 되더라도 다소 긴장한 듯한 인상을 줬던 것과는 다르게 편하게 농담을 주고 받는 모습이었다. 이런 변화에 관해 물었더니 그는 "결국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말하며 웃었다.

"이제 적응이 됐나봐요.(웃음) 여전히 낯을 가리긴 해도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제가 말을 재밌게 하는 사람도 아니고요. 더 둥글게 둥글게 살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저 역시 성진 같은 면이 있을 거예요. 그처럼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하는 거죠. 살다 보니까 타협하게 되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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