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쓰고 있고 비트코인 가격 또한 역대 최고가를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우리 증시는 바닥이 어디인지 모를 만큼 가파른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올해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 수익률은 이미 주요국 증시 가운데 꼴찌로 전락한 상태다. 시장에서는 '국장(한국증시)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자조적 표현까지 등장했다.
남들 오를 때 못 오르고, 떨어질 땐 더 떨어지는 것은 국내 증시의 오랜 고질병이다. 최근 시장의 부진의 직접적인 이유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세가 꼽히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증시의 허약 체질에 있다.
특히 국내 상장사들의 기업가치를 높여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한다는 취지로 정부가 내놓은 밸류업 정책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연초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놓으면서 반짝 상승세를 보였던 우리 증시는 지난 7월 정점을 뒤로 내리막을 걷고 있다.
지난 9월 발표된 코리아 밸류업 지수 역시 기준이 모호하고 기존 지수와의 차별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지수에 포함된 많은 상장사가 밸류업 공시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얻을 수 있는 직접적인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밸류업 지수에 포함된 일부 기업들의 부도덕한 행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실제 밸류업 지수에 편입된 이수페타시스는 최근 호재와 악재를 입맛에 맞게 엇박자로 공시해 투자자들을 기만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밸류업 지수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고려아연 역시 2조5000억원 규모의 기습 유상증자를 발표해 주주들의 뒤통수를 쳤다.
밸류업을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상장사들이 오히려 이를 역행하며 증시 '밸류다운'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뜩이나 밸류업 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이같은 부도덕한 행태는 우리 증시의 초라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로 돌아와 주길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밸류업 정책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증시 반등의 유일한 열쇠는 아니겠지만 향후 잘 안착한다면 분명 국내 증시의 체질을 개선할 마중물이자 불쏘시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말로만 밸류업, 밸류 없는 '밸류없' 정책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하루 빨리 제대로 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보다 단단하고 회복력을 갖춘 증시로의 체질 개선을 위해 밸류업 기준에 미달하는 기업들은 지수에서 과감히 도려내고,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제공 등 실효성 높은 지원 방안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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