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뽕밭이었던 잠원동은 무가 자라기 좋은 모래 토질이어서 무 농사가 잘됐다.
서초동은 미군과 서울 사람이 사가는 화초를 키우는 꽃동네였다. 압구정은 배나무 과수원골이었고, 도곡동은 도라지 특산지였다. 청담동은 이름처럼 물 맑은 청수골이었다.
가장 기름진 땅 개포동과 일원동 일대에서 난 과일과 채소는 품질이 상급인 데다 산지가 가깝기까지 해서 서울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개포동, 일원동 일대 주민들이 서울 시내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양재천변에서 엔진배를 타고 탄천을 따라 올라가 뚝섬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이 부근에서 서울 시내까지 육로로 가면 거의 1박 2일이 걸렸다고 하니 그 정도로 강남은 오지였다.
책 '강남의 탄생'(미지북스)은 미개발 불모지에서 수도 서울 특별구가 되기까지 강남 개발의 역사를 다룬다.
'영동'이라고 불리던 시절,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제3한강교가 완공되면서 강남은 본격적인 개발 시대를 맞는다.
대대적인 수방 사업을 통해 강남은 개발 부지로 재탄생하고 허허벌판에 격자형 도로가 깔렸다. 그리고 유명 아파트와 거리, 빌딩 그리고 수많은 사건이 이 공간을 채우기 시작한다.
이 책은 강남 개발 시기를 거치며 사라져버린 옛 기억의 장소들을 돌아본다. 수방 사업 일환이었지만 한강변에 제방을 쌓고 강변도로를 만들면서 사라져버린 옛 한강변 풍경, 1970년대 초 압구정동과 옥수동 사이에 아파트 대단지 건설을 위해 골재로 채취되어 사려진 저자도, 잠실 물막이 공사로 잠실섬 남쪽으로 흐르던 송파강이 사라지고 석촌호수로만 남게 된 이야기 등을 소개한다.
그 외에도 강남 개발 뒷이야기들도 담겼다. 정부 유력 인사가 주도한 부동산 투기,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일으킨 수서 사건, 끊어진 성수대교와 무너진 삼풍백화점에 얽힌 사연 등 이제는 역사가 된 에피소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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