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소호 '쓰는 생각 사는 핑계' [조수원 BOOK북적]

기사등록 2024/11/09 07:00:00 최종수정 2024/11/09 12:20:18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쓰는 생각 사는 핑계' 저자 이소호 시인이 8일 서울 강남구 민음사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11.09.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원 기자 = 시인 이소호(36)에게 쇼핑은 삶의 숨통을 틔워주는 취미생활이다. 어렸을 적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쇼핑에 푹 빠져 지낸다. 그가 향하는 곳은 백화점부터 빈티지숍까지 다양하다.

"글 쓰는 사이에 저한테 주는 어떤 포상이에요. 글이 안 써질 때도 포상이 될 수 있겠죠. 안 써지니까 '한 번 돌고 와야겠다' 생각해요. 돌고 오면 리프레시가 되니까요."

좀 더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종일 백화점을 산책하고, 힘겹게 써낸 시를 발표한 뒤에는 같은 옷을 네 벌씩 산다. 시집 한 권이 완성된 뒤에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기 위해 궁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사기, 쓰기, 팔기, 살기는 시인 이소호의 시간 안에서 섞이고, 충돌하고, 전복되며 한 시인의 삶을, 그리고 그의 시 세계를 완성해 나간다.

최근 산문집 '쓰는 생각 사는 핑계'를 펴낸 이소호는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소설과 산문까지 글쓰기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시집 '캣콜링'으로 제37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며 첫 시집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가상의 미술관을 거니는 듯했던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한 권의 잔혹한 우화집과도 같았던 '홈 스위트 홈' 등 시집마다 얼굴을 바꾸며 시 세계의 지평을 넓혀 왔다.

그는 장르마다 글을 쓸 때 강조하는 포인트를 달리한다고 했다. "시는 현실, 소설은 SF, 산문은 웃기게 쓰는 게 제 목표"라며 "웃기게 쓰는 건 프랑스 여자가 됐다고 생각하고 쓰는 것이고, 솔직한 느낌으로 다 까발리게 쓰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쓰는 생각 사는 핑계' 저자 이소호 시인이 8일 서울 강남구 민음사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11.09. pak7130@newsis.com


"나는 시인이 직업이라고 생각하며, 쇼핑도 건강한 취미라고 생각한다. 문학과 쇼핑을 한자리에 두고 생각하는 일이 전혀 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예술가'라는 단어에 갇혀서 돈에 대해 말하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으나 이제는 이 물욕이 글을 쓰게 하는 커다란 원동력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싶다."(125쪽)
이소호는 첫 문장을 쓰는 순간 어느 작품이든 한 편을 다 완성한다고 했다. '쓰는 생각'을 할 때는 기계처럼 온전히 글 쓰기에만 몰입하는 게 비결이다.

"하루 종일 쓰기만 해요. 이제 쉬어야지 해도 잠도 안 와요. 왜냐하면 그때는 써야 하니까요. 문학 하는 기계죠. 저는 직업이니까요."

이렇듯 한 작품이 세상에 나오면 보상으로 그는 쇼핑을 떠난다.

시인으로 활동하지만 애초에 시인을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 아이돌을 좋아했던 터라 작사가를 꿈꿨다. 학창 시절 전국 단위 백일장에 참가해 시를 냈고 덜컥 2등으로 입상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난리가 났고, 난생처음 보는, 지역의 한 중년 여성 시인이 나의 손을 꼭 잡으며 내게 그랬다. '경진 양, 꼭 시를 쓰세요. 시가 너무 좋아요.' 그 말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139쪽)

이소호는 "(작사가가 되려면) 그런 문예창작과에 들어가야 했고 문예창작과에 들어가려면 입시를 봐야 했다"며 "입시를 보려면 시를 써야 해서 강제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이유를 고백했다.

어렸을 적 불렸던 이경진이라는 이름이 흔해 이소호로 개명했다.

이소호는 "친구들에게 엑셀표로 내가 원하는 이름들을 만들었다"며 "투표를 통해서 몇 개를 철학관에 보내 사주팔자에 맞는 이름을 달라고 했더니 소호를 줬다"고 했다.

"'앞으로 어떤 시인이 되고 싶어?' '나는 클래식이 되고 싶어.' '클래식이 뭔가요?' 누가 묻는다면 솔직히 모르겠다. '그래, 잘나가서 오래 읽히면 그게 클래식이지.' 생각했지만, 나는 그 클래식이라는 단어 하나에서 어떤 물건을 생각했다. 엄마가 오래오래 보관하다 딸에게 대대로 물려주며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나보다도 빠짐없이 참석하는 샤넬 클래식 미디엄 백을 생각했다. 웃기지만, 그만큼 여러 사람 손에서 오래오래 읽히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는 마음이었다."(194쪽)

이소호는 클래식 같은 시인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답을 내렸다.

"매번 새로운 작품을 내면 돼요. 그러면 결국 클래식이 돼요. '이 연도에 이런 시인이 있었지', '이 세대를 아우르는 시인이 있었지', '이 시인은 늘 카멜레온처럼 몸을 바꾸는 시인이었지'라는 캐릭터가 되잖아요. 캐릭터성이 있던 시인들이 항상 남는 것 같더라고요."

최근에도 명품 향수를 구매한 이소호는 다음으로 사고 싶은 물건도 이야기했다.

"프라다 가방 중에 2000년대 가방은 특이해요. 삼각 로고가 없어요. 삼각 로고가 없는 프라다 가방을 사고 싶어요."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쓰는 생각 사는 핑계' 저자 이소호 시인이 8일 서울 강남구 민음사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집 '캣콜링'으로 제37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며 첫 시집부터 수많은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시인 이소호의 산문집 '쓰는 생각 사는 핑계'가 민음사의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으로 최근 출간되었다.  2024.11.09. pak713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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