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익명에 숨은 '서울대 N번방' 끝나지 않아…사법부 경종 울려야

기사등록 2024/11/04 15:34:59
[서울=뉴시스]이소헌 기자 = "피고인은 언제든 범행을 중단하고 반성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이른바 '서울대 N번방' 사건에서 허위음란물을 제작하고 배포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주범 박모(40)씨에게 1심 재판부가 선고를 내리며 한 말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부장판사 박준석)는 지난달 30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성착취물제작·배포 등) 등 혐의로 기소된 박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검찰의 구형량과 같다.

선고 내내 박씨는 피고인석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그는 네 번의 1심 공판기일에서도 "피해자들이 고통받기를 원한 게 아니다"라며 눈물을 보이곤 했다.

그런 박씨가 피해 여성들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 기간은 확인된 것만 약 3년6개월. 재판부 말대로 범행을 멈추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범행을 멈추지 않은 그가 편집, 합성 또는 가공한 영상은 2034개에 달한다.

선고가 끝나고 박씨는 방청석을 향해 "죄송하다"며 여러 차례 허리를 숙였다. 피고인의 반성은 이미 늦었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인간관계를 모두 끊고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사람을 마주하기 힘들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둬야 했고, 심지어는 혼인 관계가 파탄 나기도 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텔레그램으로 사진과 영상이 퍼져나가도 피해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텔레그램이 높은 보안성을 가졌을 뿐 아니라 해외 기업이라 국내 수사당국이 서버를 압수수색 할 수 없어 수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박씨가 익명성 뒤에 숨을 수 있던 이유다.

반면 이 사건 피해자들은 자신의 인간관계와 일상생활이 무너지는 와중에 자신의 허위영상물을 마주하며 몇 년 동안 직접 피고인을 찾아내야 했다. 이 기간 2034개 영상 속 피해자들이 흘렸던 눈물의 무게는 피고인이 법정에 와서야 흘렸던 눈물보다는 무거울 것이다.

이 사건 재판부 역시 주범 박씨의 눈물을 유리한 양형 요소로 참작하지 않고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고작 익명성에 숨어서 법과 도덕을 중대하게 무시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인식시키고 사회 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 사법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법을 비웃으며 익명성 뒤에 숨어 이루어지는 범죄가 횡행하는 가운데, 관련 범죄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비슷한 범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피고인들을 엄중히 처벌해 경종을 울려야 하는 역할이 사법부에 있기 때문이다. 아직 N번방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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