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이 '젠더 전쟁'된 이유, 틱톡 피드 보면 안다

기사등록 2024/11/04 16:12:52 최종수정 2024/11/04 18:56:17

영상 플랫폼, 소셜미디어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

남성에겐 트럼프, 여성에겐 해리스 영상 더 노출

유튜브에 과몰입하는 사람, 정치적 편향성 크다

플랫폼마다 피드 제각각…투표에 영향 미칠수도


[서울=뉴시스] 안호균 기자 = 남녀 후보 대결로 치러지는 미국 대선의 가장 큰 이슈는 젠더 문제다. 여론조사를 보면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는 여성 유권자 층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남성 유권자 층에서 더 높은 지지를 받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번 대선에서 성별간 투표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게 미국 대선이 '성 대결' 양상으로 전개된 이유는 무엇일까? 성별부터 인종, 이력까지 판이하게 다른 두 후보의 특성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최근 들어 급속히 바뀐 미디어 환경에서 그 이유를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 '틱톡 대선'으로 불리는 이번 선거는 동영상 플랫폼과 소셜미디어가 젊은 유권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하는 계기였다.

유튜브, 틱톡 같은 플랫폼에서 영상이 노출되는 공간을 피드(feed)라고 한다. 플랫폼이 유저에게 먹이를 주듯 콘텐츠를 공급한다는 뜻에서 이 용어가 생겨났다. 피드에 올라오는 콘텐츠는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플랫폼들은 나이, 성별, 지역 등 인구통계학적 정보와 시청 기록 등을 분석해 특정 유저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피드에 노출하는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알고리즘은 영상 시청을 유도하기 위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호감' 뿐만 아니라 '반감'도 활용한다. 최근 많은 연구들에서 유튜브와 틱톡이 이용자의 검색 행위와는 관계 없이 혐오 감정을 유발하는 영상을 추천한다는 사실이 관찰되고 있다. 그리고 젊은층을 불타오르게 만들 수 있는 대표적인 소재가 바로 젠더 문제다.

최근 미국의 Z세대(Gen Z) 사이에서 젠더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점은 알고리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독자 800명에게 4월부터 9월까지의 틱톡 시청 기록을 제공받아 이들의 동영상 피드를 분석했다. 그 결과 여성 유저는 남성에 비해 해리스 후보 관련 콘텐츠를 11% 가량 더 많이 제공받았다. 반면 남성의 경우 트럼프 후보의 영상을 보게 될 확률이 12.5% 가량 더 높았다. 시청 기록을 제공한 이들의 86%가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답할 정도로 정치적으로는 유사성이 큰 집단이었지만, 성별에 따라 보게 되는 동영상이 크게 달랐던 것이다.

이런 알고리즘은 유저를 플랫폼 내에 오래 잡아두기 위해 데이터와 확률에 근거해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게임 영상을 주로 보는 시청자는 트럼프의 영상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거나, 책 리뷰 영상을 자주 보는 유저는 해리스의 콘텐츠를 클릭할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접근이 가능하다.

[뉴욕=AP/뉴시스]억만장자 일론 머스크가 27일(현지시각) 뉴욕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지지 유세에 참석한 모습. 2024.10.28.


◆유튜브 과이용자, 정치적 편향 심각…"피드가 투표 결정할수도"

영상 플랫폼이 정치·뉴스 콘텐츠를 노출하는 방식에는 꾸준히 우려가 제기된다. 이용자들에게 사상적으로 극단적인 콘텐츠를 추천해 양극화를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다. 실제로 영상 플랫폼에선 중립적인 시각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정치 콘텐츠보다는 한 진영의 입장을 대변하고 상대편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는 콘텐츠가 더 큰 인기를 얻는 경향이 있다.

유튜브로 주로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최지향 이화여대 교수가 지난 2일 방송통신연구에 기고한 논문에 따르면 '유튜브 뉴스 과이용자' 집단은 '정치적 양극화 값'이 48.27로 비이용자(31.53), 간헐적 이용자(34.29), 정기적 이용자(37.52)에 비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에는 플랫폼이나 소셜미디어가 의도적으로 유권자의 투표 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BBC는 X(구 트위터),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5개 플랫폼에 가상 인물들의 계정을 만들어 소셜미디어 피드가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미국 위스콘신에 거주하는 61세 흑인 남성 마이클, 플로리다에 사는 44세 맥시코계 여성 가브리엘라 등 다양한 특성을 가진 5명의 가상 인물을 생성했다.

가브리엘라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무당층에 가깝다. 초기에는 댄스 콘텐츠, 스페인어 페이지 등 정치와 무관한 콘텐츠를 이용했다. 하지만 제작진이 추천한 콘텐츠를 2년간 시청하면서 피드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플랫폼마다 이용자에게 추천하는 콘텐츠의 성격이 크게 달랐다는 점이 눈여겨 볼 부분이다. 가브리엘라의 틱톡과 유튜브 계정은 두 후보의 캠페인 메시지 등을 담은 여러 콘텐츠를 추천했다. 정치 광고를 받고 있는 유튜브의 경우 경제 정책에 초점을 맞춘 두 후보의 영상이 많이 제공됐다. 또 틱톡 계정은 라틴계 유권자라는 정체성과 관련된 콘텐츠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해리스의 영상이 피드에 오르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은 정치 콘텐츠 추천에 소극적이었다.

그런데 X의 콘텐츠 피드는 다른 플랫폼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트럼프와 관련된 콘텐츠를 더 많이 추천했다. 또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일론 머스크의 게시물이 피드 상단에 노출되는 경우가 유독 많았다. 게다가 '선거 사기'와 같이 근거 없는 주장도 그대로 공유됐다.

BBC는 가브리엘라가 2022년 8월 X에 계정을 생성했는데 머스크가 X를 인수한 2022년 10월 이후 피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비정치적이었던 유권자도 소셜미디어에서 정치의 홍수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며 "그녀가 누구에게 투표할지는 어떤 소셜미디어 사이트를 신뢰하는지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고 짚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ahk@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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