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여름이 유난히 길게 이어졌다. 그런 탓에 나뭇잎이 늦게서야 가을 색을 입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겨울은 왜 이리 서둘러 오는 것인지. 홍엽(紅葉)은 미처 만산(滿山)하지 못한 채 이른 북풍에 하나둘 지고 있다.
하지만,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만추'(晩秋)엔 이 또한 '매력'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시인 겸 문학 평론가 레미 드 구르몽(1858~1915)이 시 '낙엽'에서 '시몬'에게 "좋으냐?"고 물었던, 길에 쌓인 낙엽을 밟을 때마다 들리는 '바스락' 소리 때문만은 아니다.
낙엽 위 걸음마다 신발을 넘어 느껴지는 감촉, 그리고 낙엽 하나하나가 마치 올 한 해 내가 보낸 시간의 편린(片鱗)인 것과 같은 착각까지 다 그렇다.
그런 곳을 찾고 싶은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한국관광공사가 '11월에 가볼 만한 5곳'을 꼽았다. 바로 ‘낙엽 밟으며 걷는 길’들이다.
[서울=뉴시스]김정환 관광전문 기자 = 전남 나주시 산포면에 '전라남도 산림연구원'이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22년, 지금의 광주광역시에 설치됐던 '임업 묘포장'이 그 모태다. 무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셈이다.
연구원은 1975년 현 위치로 이전한 뒤, '시험림'을 조성해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
시험림은 명칭 그대로 각종 산림 자원의 시험과 연구 목적으로 만들어진 숲이지만, 몇 해 전부터 주목받고 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의 아름다운 풍경이 SNS 등을 통해 알려진 덕이다.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오자, 연구원은 시험림을 '빛가람 치유의 숲'으로 정돈하고, 일반에 개방했다.
방문객은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매일 오전 9시~오후 5시, 3월부터 10월까지 매일 오전 9시~오후 6시 숲을 편히 이용할 수 있다.
빛가람 치유의 숲에선 무려 1000종이 넘는 식물이 자란다. 전남에서 서식하는 온갖 나무와 꽃, 풀을 이곳으로 옮겨 산림 자원 연구 목적으로 활용하는 데 따라서다.
그 대부분을 방문객 누구나 만나볼 수 있다. 이 숲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한 이유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사계절 언제나 초록빛을 뽐내는 '상록수'다. 호랑가시나무, 동백나무 등이 바람결에 푸른 잎을 찰랑댄다. 따스한 남도 식생을 한데 모아 놓은 공간답다.
물론, 가을을 맞이해 화려한 색깔로 잎을 물들이는 나무도 많다.
메타세쿼이아가 대표적이다. 약 400m 길이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인기가 꺾일 줄 모른다. 무엇보다 11월 초중순에 이곳을 찾는다면 '황금빛' 길을 감상할 수 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과 나란히 뻗은 '향나무길'은 이에 뒤질세라 '초록빛' 매력으로 방문객 마음을 사로잡는다.
'활엽수원' '화목원' 등 가을 정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숲을 찾아 거닐어 보자. 수북이 쌓인 낙엽이 왠지 모르게 감수성을 자극한다.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이 풍요를 느끼게 한다. 단, 연구 목적으로 재배 중이므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숲은 대부분 평지 또는 완만한 경사로로 이뤄져 있지만, 숲 사이로 '무장애 나눔길'마저 놓았다. 특히,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주변으로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만한 목조 덱이 이어진다.
노약자, 장애인 등 보행 약자도 편안하게 숲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이런 배려는 차고 넘쳐도 된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옆 '유아 숲 체험원'은 매년 3월부터 어린이집, 유치원 등 관련 기관 신청을 받아 11월까지 평일 오전에 '유아 숲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 외 시간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다. 목제 숲 놀이 시설이 설치돼 어린이가 뛰어놀기에 좋다.
숲이 훌륭하지만, 연구원의 전부가 아니다. '산림 치유센터'가 있다.
매년 3월부터 11월까지 오전과 오후, 각 2시간씩 대상자에게 알맞은 프로그램 7종으로 '맞춤형 산림 치유 서비스'를 제공한다. 산림 치유 지도사가 상담과 프로그램 진행을 맡는다. 예약이 필요하지만, 여유로울 때는 현장 신청도 받는다. 1인 1만원.
가볍게 숲을 즐기고 싶다면 '숲 해설'을 이용해 보자. 연구원 내 산림 자원을 숲 해설사와 함께 둘러보는 상설 프로그램이다.
주변 관광지로는 '빛가람 호수 공원'이 있다. 나주 빛가람 혁신 도시 중앙에 조성된 공원이다.
한가운데인 베메산 정상에 '빛가람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해발 80m에 불과해 성인이면 약 10분 정도 걸어서 오르기에 충분하다. 모노레일을 타면 3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전망대에 올라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해 보자. 산 주변으로 드넓은 인공 호수가 펼쳐진다. 봄부터 가을까지 호수에서 '음악 분수'가 운영된다.
다음은 '국립 나주박물관'이다. 전남 지역, 특히 나주 영산강 유역에서 발굴한 고고학 자료를 보존·전시한다.
'반남 고분군' 유물을 중심으로, 이 일대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다룬다. 특히, 고분군에서 출토된 '독널'(고대에 점토를 구워서 만든 관), '껴묻거리'(장사 지낼 때 함께 묻는 물건, 부장품) 등을 통해 '마한 문화권' 역사를 설명한다.
백제 유물인 '나주 신촌리 금동관'(국보 제295호)도 감상할 수 있다.
과원동엔 조선 제9대 성종(1475∼1479) 시기에 건립된 '금성관'이 있다. 중앙 관리, 외국 사신 등 중요한 인물이 방문했을 때 머무는 '객사'였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왕과 궁궐을 향해 예를 올리는 '망궐례'도 행해진 만큼 지역 관아보다 더 지위가 높은 건물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장 김천일이 출병식을 열었고,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났을 땐 명성황후(1851~1895)의 빈소가 차려졌던, 가히 '항일'의 상징이다.
바로 앞에 '나주곰탕 거리'가 있다.
114년 역사의 '하얀집'을 비롯해 '노안집' '남평할매집' 등 '맛집'이 즐비하지만, 손님도 전국에서 몰려오니 웨이팅은 각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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