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가격, 내리면 좋다?…"오히려 소비자 부담 증가"

기사등록 2024/10/25 14:00:00 최종수정 2024/10/25 16:36:16

약가 인하 정책이 제약사 행태에 미치는 영향 발표

외부충격은 매출감소 대응 기업의 행태 변화 야기

제약기업 성장에 부정 영향…건강보험 재정도 악화

[서울=뉴시스] 정부의 약가 인하가 제약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 약화로 이어지고 소비자 부담을 높인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송연주 기자 =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이 제약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 약화로 이어지고 소비자 부담을 높인다는 분석이 나왔다.

연세대학교 최윤정 교수는 25일 고려대 서울캠퍼스에서 열린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약가 인하 정책이 제약기업의 성과와 행태에 미치는 영향'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원사 중 96곳을 대상으로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정책 이후 국내 제약산업 구조 변화를 분석했다. 일괄 인하는 건강보험 등재 의약품의 가격을 평균 14% 내린 대대적인 약가 인하 정책이었다. 일괄 인하에 대한 기업별 노출 강도를 ▲약노출 ▲중노출 ▲강노출로 구분하고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소비자, 생산자, 건강보험공단의 후생 및 재정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약가 인하 중노출 기업(41곳)은 약가 인하가 없었을 가상의 상황 대비 2012년 매출액이 약 8% 감소했고, 2013~2019년 연도별 매출액도 약 23~32% 준 것으로 추정됐다. 강노출 기업(33곳)은 약가 인하가 없었을 가상의 상황 대비 2012년 매출액이 약 12% 줄었고, 2013~2019년 연도별 매출액 약 31~51% 감소가 추정됐다.

2012년 일괄 인하 노출 기업의 2013년 매출액은 통제집단 대비 약 3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고, 2019년까지 약 26~51.2% 매출 감소가 지속됐다.

약가 인하 노출도가 클수록 기업의 매출 성장세 역시 상대적으로 둔화됐다. 2012년 인하 정책이 매출액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2013년부터는 매출액 중위 기업(65개사) 및 상위 기업(25개사)에서, 2015년부터는 매출액 하위 기업(22개사)에서 본격적으로 발현됐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크기의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정책이 기업 매출액 성장세를 둔화시키며, 제약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및 대형화에 부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약가 인하에 노출된 기업은 생산 및 매출 구성 변화를 통해 매출 감소 충격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 가격 제한을 안 받는 비급여 의약품 품목수를 늘려, 전체 의약품 중 비급여 의약품 비중이 증가했다. 약가 인하에 노출되지 않은 기업 대비 약가 인하 노출 기업의 2012년 비급여 의약품 수는 약 31.5% 증가했다. 이로 인해 전체 의약품 수도 증가했고, 전체 의약품 중 비급여 의약품 비중이 2012년 약 4% 증가해 2019년 기준 17.3%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약가 인하 충격 이후 기간에 연평균 약 10%의 보험급여 전문의약품 생산 비중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기적으로는 급여 약제 생산 비중에 큰 변화가 없었으나 2016년부터 20~36% 급여의약품 생산 비중이 줄었다.
 
매출액 내 자체 생산 제품 비중 감소 경향도 보였는데, 약가 인하 중노출·강노출 기업의 자체 생산 제품 매출은 11%~106% 감소했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수입 의약품을 판매·유통하는 식의 코프로모션 비중도 늘었다. 매출액 상위 기업의 코프로모션 매출액 비중은 2012년 약 3.5% 증가 이후 2019년까지 2.2~3.8% 범위에서 증가 상태를 유지했다. 중노출 기업들이 주로 약가인하 대응을 위해 코프로모션 매출액 비중을 증가시킨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진은 "약가 인하 대상이 아닌 비급여 의약품 품목수 증가, 약가 미인하 품목 생산 비중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면서 약가 인하의 목적 중 하나였던 '건강보험재정의 부담 완화' 효과가 오히려 줄었고 장기적으로 전체 약품비 및 소비자 부담 증가, 건강보험 보장성 저하를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괄 약가 인하 정책이 없었다면 노출 기업의 자체 생산 매출액도 유지 또는 증가했을 것으로 관측된다"며 "장기적으로 기업의 수익성 악화 및 자체 생산 능력·수급 안정성도 약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수입의약품 코프로모션의 증가는 의약품비 증가로 인한 소비자 부담 및 재정 부담으로 연결된다고도 지적했다.

◆"약가 인하 부작용 가속화될 수도…재정 부담 완화에 효과적이지 않아"

또 미인하 전문의약품 생산 비중 증가에 따른 건보 재정 분석 결과, 기업이 약가 인하 충격을 받지 않는 품목(미인하 급여의약품)의 생산을 늘림으로써 건보재정 부담이 증가하거나 소비자 보장성이 악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정책 등 외부 충격은 개별 기업의 행태와 성과에 영향을 미치고, 기업 행태 변화로 인해 정책이 의도하지 않았던 재정·소비자 부담 등 사회 전체의 후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어 "중장기적으로 고령화, 의약품 수요 증가, 오리지널 및 고가약에 대한 선호도 변화, 처방 행태 변화 등과 맞물려 약가인하 정책에 따른 부작용도 가속화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약가인하 정책이 재정 부담 완화에 효과적이지 않다. 시장구조-행태-성과의 인과 관계 등을 고려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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