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나는 그들의 문자가 불쾌하다

기사등록 2024/10/23 08:01:00


[서울=뉴시스]송혜리 기자 = "주말 동안 확인을 안하셔서 다시 보내드려요."

기자의 문자함 단골 손님이 보내오는 내용이다. 그는 잠시 잊을 틈을 주지도 않고 집착스럽게 문자함을 두드린다.

말머리만 읽었을 땐 '내가 주말에 타사의 중요한 기사를 놓쳤나?'라고 순간 해석해 반사적으로 문자함을 연다. 그리고 사기를 치려는 스미싱(문자피싱)인 것을 확인하곤 이내 허탈해진다.

최근엔 여성인 기자에게 '오빠 저 시간있다'고 하거나, 자신의 키와 몸무게 설명하며 만나자고 하는 로맨스스캠 문자가 늘었다. 로맨스스캠은 이성적 관심을 표하면서 신뢰를 형성한 후, 금전을 요구하는 사기 수법이다. 대상의 성별도 모르고 보내는 이런 문자를 받으면 '한 놈만 걸려라'하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그저 헛웃음이 난다. 

원하지 않는 이런 음담패설같은 문자를 계속 받아야 하는 상황이, 또 어떻게든 사람들을 속여 돈과 정보를 갈취하기 위해 그야말로 문자를 '배설'하는 이들의 행태가 개탄스럽기도 하다.

'신고' 버튼을 눌러보지만 그 뿐이다. 그들은 새로운 전화번호로 또 어김없이 '나랑 만나자'는 웃기지도 않은 문자를 보내온다.

아무리 문자 속 인터넷주소(URL)를 클릭하지 말고, 아는 사람이 보내 온 문자더라도 상황적 의심이 들면 당사자에게 확인을 하라고 신신당부를 한다고 해도, 한순간에 피해를 당할 수 있다. 피해자들은 수백, 수천억원대 금전적 피해는 물론이고 '바보같이 내가 그런 것에 당했다'는 수치심으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정부도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2010년 이후 피싱 범죄에 따른 피해액이 수천억원대에 달하면서, 정부와 금융기관에서 이를 막기 위한 다양한 예방 조치와 법적 대응을 취했다. 주로 피싱 범죄에 대한 신고창구 다각화, 범죄에 악용된 디지털수단 통제에 주력했다.

2012년 휴대폰에서 '발신번호 변경' 기능을 금지해 전화번호 거짓 표시로 인한 피해 예방에 나서는 한편, 스미싱 분석·차단 시스템을 구축했다. 2020년엔 관계부처 합동으로 '보이스피싱 척결 종합방안'을 내놨다. 2022년엔 '사이버범죄 대응 범부처 대책' 마련을 통해 경창철 보이스피싱 통합신고대응센터 운영을 시작했으며, '스팸 신고' 버튼을 도입했다. 올해엔 관계부처합동으로 '보이스피싱 통신분야 대책'을 마련해 '피싱' 간편신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피싱으로 인한 피해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되려 천정부지로 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국내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은 올해 상반기 이미 3242억원을 넘어섰고, 올해 말까지 6484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국내 스미싱탐지건 수는 올 상반기에만 88만7859건을 기록해 지난해 연간 탐지수를 이미 훌쩍 뛰어 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별법의 필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피싱 문제를 기존 법의 한계, 증가하는 피해 규모, 그리고 국제적 규제 흐름을 고려해 보다 강력한 '특별법'으로 관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국내 법 체계서는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을 통해 피싱 문제를 규제하고 있지만,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날로 정교해지는 피싱 범죄를 효과적으로 막기에 역부족이다.

아울러 이들 법안은 범죄 발생 이후의 처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사전 예방과 피해 복구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특별법은 피싱 범죄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기술적 조치, 예를 들어 필터링 시스템 강화와 본인 인증 절차 강화 등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 피해자의 신속한 구제를 위한 절차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도 특별법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현행법은 피해 발생 후 처리 속도가 느리고 피해자가 즉각적인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 빈번한데, 특별법은 이를 보완해 피해 복구 과정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이제 피싱 문제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개인의 경제적 피해와 정보 안전을 위협하는 주요한 사회문제로 자리잡았다. 피싱으로부터 안전한 디지털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빠른 시일 내에 특별법 마련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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