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보다 편한 '먹는 치매약' 만든다…5000억 계약 맺은 'CV-01' 신약(종합)

기사등록 2024/10/21 14:34:09

KIST 창업기업 큐어버스, 이탈리아 제약사에 5037억 수출 계약 체결

CV-01 치매치료제, 복용 편한 경구성 약물로 개발…치매 예방도 기대

[서울=뉴시스] 치매 관련 이미지 (사진=GC녹십자의료재단 제공) 2024.09.2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창업기업인 '큐어버스'가 보다 안전하면서 간편한 형태의 치매치료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 치매치료제가 주사 형태인 것과 달리 입으로 먹는 약으로 개발 중이다. 이를 통해 큐어버스는 출연연구기관가 만든 연구소기업 중 역대 최고 수출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21일 과학기술정보신부와 KIST에 따르면 큐어버스는 지난 16일 오전 11시(현지 시각, 한국 기준 18시) 이탈리아 제약사 안젤리니파마와 총 3억7000만 달러(약 5037억원, 개발단계별 마일스톤 포함)의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의 주인공은 지난 9월 임상 1상에 착수한 치매치료제 'CV-01(씨브이-공일)'이다. CV-01은 치매(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등 뇌질환을 근원적으로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되고 있다.

그간 제약회사들은 치매의 원인으로 꼽혀온 아밀로이드베타단백질이 뇌에 과다하게 쌓이는 것을 막거나 제거하는 물질을 개발해왔으나, 효능의 한계와 환자 사망 등 안전성 문제가 존재하였다.

이에 최근 글로벌 제약회사들은 뇌염증 및 산화성 스트레스가 치매의 근원일 가능성에 주목해 이와 관련된 차세대 기전의 치료제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KIST 박기덕 박사 등 연구진이 2014년부터 차세대 치매치료제 개발에 돌입했다. 특히 Keap1/Nrf2(킵원/엔알에프투) 시그널 경로를 통해 신경염증 반응을 억제하여 뇌 신경회로 손상을 방지하는 방식에 집중했다.

Keap1/Nrf2는 산화성 스트레스 및 염증에 대한 생체 내 대표적 방어 기전이다. 고령화로 기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 치매, 파킨슨병 등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로는 평상시에는 작동하지 않다가, 스트레스나 약물 등에 의해 작동하게 된다. 신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물질이 들어오면 스위치가 켜지듯 방어에 나서는 셈이다. 하지만 고령화, 질병 등으로 인해 몸에 문제가 생겨도 이 방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치매, 파킨슨병 등의 원인이 된다.
[서울=뉴시스]조성진 큐어버스 대표가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탈리아 제약사 안젤리니파마와 체결한 총 3억7000만 달러(약 5037억원, 개발단계별 마일스톤 포함)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윤현성 기자)
KIST 연구진은 수년 간의 연구 끝에 해당 반응 경로를 표적(타겟팅)하는 CV-01을 개발했다. 신약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해당 기전의 치매치료제로는 세계 최초가 된다. 파킨슨병, 뇌전증 등 뇌 신경 손상이 원인인 다양한 뇌신경계 질환에도 적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CV-01의 치료제로서의 특장점은 먹는 약으로 개발됐다는 것이다. 현재 활용되고 있는 치매치료제는 대부분 주사제다. 하지만 CV-01은 먹는 약으로 개발돼 환자가 자가에서 손쉽게 주기적으로 복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질병의 원인 물질에만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성질이 커서 기존 뇌혈관부종 등 부작용도 적을 것으로 보인다. 저분자 화합물 약물이어서 뇌혈관장벽 투과가 용이해 뇌 등으로의 약물 침투가 빠르다는 장점도 있다.

KIST 연구진은 CV-01 개발 과정에서 쥐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치매에 걸린 쥐가 CV-01을 복용하면 기억력과 인지·공간능력 등이 일반적인 쥐와 비슷한 수준으로 개선됐다. 치매에서 많이 나타나 염증을 일으키는 일종의 단백질 노폐물인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억제하는 효능도 발견됐다. 아밀로이드 플라크는 알츠하이머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여겨진다.

또한 치매의 발병 전 예방 용법으로도 활용이 가능한 것도 특징이다. 쥐 실험 결과 통상적으로 4개월 즈음부터 치매에 걸린 쥐의 뇌에서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나타났는데, 3개월 차부터 CV-01을 먹이기 시작하니 해당 단백질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같은 효과를 활용하면 치매의 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KIST의 설명이다.

큐어버스는 현재 진행 중인 임상 1상을 내년 말까지 마치고, 2026년 임상 2상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임상을 비롯한 모든 개발 계획이 완벽하게 이뤄진다고 가정할 경우 약 5년 후에 상용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현재 큐어버스는 과기정통부와 보건복지부 공동 주관의 '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 지원을 받으며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아울러 이번 기술이전 계약에 따라 이탈리아 제약사가 유럽·미국 등 시장을 대상으로 임상 및 상용화를 추진하지만, 한국과 중국을 대상으로는 큐어버스가 계속해서 기술 권리를 갖고 개발을 이어갈 예정이다.

CV-01 개발을 이끄는 박기덕 KIST 박사는 "치매는 고령화에 따른 전세계적 사회 문제다. 특히 한국은 고령화가 빠르게 이뤄지면서 2050년에는 약 106조원의 사회적 비용과 300만명 이상의 환자가 예상되고 있다"며 "CV-01은 기존 약품들의 부작용·독성 등을 극복하고 효능과 안전성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조성진 큐어버스 대표는 "치매 치료제 국산화라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저희도 CV-01 개발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라며 "알츠하이머 정복을 위한 치료제 개발을 가속화하고, 궁극적으로 조단위의 신약 개발 유니콘 업체로 발돋움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국책과제 수주, 투자유치, 글로벌 기술 수출 등을 지속적으로 달성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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