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헌재소장 퇴임…"사법 정치화 경계하고 재판독립 이뤄야"

기사등록 2024/10/17 12:27:36 최종수정 2024/10/17 14:42:17

"사법 정치화, 헌재 결정 불신 초래해 권위 추락"

이영진 "연구관 증원 필요"…김기영 "미련 없어"

여야, 추천 방식 갈등…당분간 공석 이어질 듯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10.11. kch0523@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종희 기자 =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이 17일 임기를 마치면서 "사법의 정치화를 경계하고, 재판의 독립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헌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헌법재판소의 현재 상황이 위기 상황이라고 느끼고 있다. 지금까지의 긍정적인 평가에 안주해선 안 되고 변화가 필요한 위기상황에 홀로 힘들게 서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권한쟁의심판, 탄핵 심판과 같은 유형의 심판사건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며 "정치적 성격의 분쟁이 사법부에 많이 제기되는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나타나면 뒤이어 사법의 정치화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것은 많은 정치학자와 법학자들이 지적하는 바"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법의 정치화 현상은 결국 헌재 결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해 헌재의 권위가 추락할 것이며, 이는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질서를 해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 헌재 가족 모두는 우리 자신의 마음가짐과 의지를 굳게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를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소장은 업무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높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소장은 "금년 상반기에 다수의 미제사건이 감소하는 가시적 성과가 있었지만, 이러한 효과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업무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건 접수의 경향이나 성격, 관련 통계의 세심한 분류에 기초해 개선방안의 시행에 따른 성과와 장단점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이 내년 이후로 계속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날 함께 퇴임하는 이영진 재판관은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 격언과 함께 우리 재판소에 대해 신속한 사건처리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오고 있다"며 "후임 헌법재판관이 선출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사건의 심리와 처리는 더욱 정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재판관은 "'정의는 지각을 하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결석을 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신속한 재판을 위해 재판관들은 6년 내내 모두 최선을 다해 직무를 수행했지만, 워낙 많은 사건이 접수되는 탓에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이 재판관은 "헌법연구관 증원이 매우 절실하다"며 "양적으로 접수사건의 수가 증가하는 것과 함께 질적으로도 보다 심도 있는 헌법적 연구와 검토가 필요한 사건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향후 신속한 사건처리를 위해서는 헌법연구관을 획기적으로 증원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기영 재판관은 퇴임사에서 "6년 동안 여러 사건들을 접하면서, 사건들 그리고 선례와의 사이에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점을 잘 드러내고, 또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담은 의견을 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며 "하지만 미련은 없다. 앞으로 재판소에서 훨씬 더 좋은 결정을 많이 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 재판관은 지난 2018년 국회 몫으로 선출돼 6년 임기를 마무리했다. 이 소장은 지난해 12월 재판관 임기 중에 헌재 소장으로 선출돼 임기를 마치게 됐다.

이들 재판관들의 후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아 당분간 공석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국회 몫 헌재재판관 추천 방식을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여당은 여야 한 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한 명은 관례대로 합의해 추천하자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원내 1당이 3명 중 2명을 추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재판관 정족수 부족으로 사건 심리가 불가능해져 이른바 '헌재 마비' 사태가 일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헌재는 지난 14일 심리 정족수를 7명으로 규정한 헌재법 23조 1항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인용하면서 '헌재 마비' 사태는 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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