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이순재 건강악화로 하차
곽동연·박정복 5회 추가 공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공연 중인 무대 뒤에서 한없이 기다리는 두 배우가 있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를 연기하는 배우 신구와 박근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허름한 지하 공간에서 언더스터디 배우 에스터(이순재)와 밸(최민호)은 자신들이 무대에 설 수 있길 고대한다. 사무엘 베게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마주, 패러디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서다.
언더스터디란 메인 배우가 부득이한 상황으로 공연에 설 수 없을 때 대신 투입되는 배우다. 이들은 배우가 갑자기 대체돼야 할 경우를 대비해 똑같은 배역을 연습하지만 실제로 무대에 설 확률은 희박하다.
"우린 무대에 못 올라가. 기다리는게 우리 일이야"
한없이 기다리는 두 배우는 예술·인생·연극과 같은 주제의 질문과 씨름한다. 우스꽝스럽고 진지한 그들의 모습은 삶과 예술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애스터는 배우는 기다리는 직업이라고 한다. 연기는 기술이 아니라 창조의 과정이라며 지름길이 없다고 외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난해한 연극이지만 이번에 국내에서 초연하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는 웃음 요소를 가미하고 원작을 쉽게 풀어내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간다.
원작에서 주인공들이 누군지도, 언제 올 지도 모르는 고도를 이유도 명확하지 않은 채 하염없이 기다린다면, 이 작품에서 에스터와 밸이 기다리는 대상은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다. 기다리는 이유는 무대에 오르기 위해, 기다리는 대상은 이 염원을 실현시켜줄 연출이다.
고정 역할로 진행된다. 연륜 있는 에스터와 햇병아리 밸을 이순재가 최민호·카이와, 곽동연이 박정복과 연기한다.
최민호는 첫 연극 작품을 택하는 데 있어서 꽤 영리한 선택을 한 듯 하다. 연극계 초보인 그에게 한 평생 무대에서 연기혼을 불태운 대배우 이순재가 연기 지론을 설파하는 모습은 극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배우들의 연기력과 몰입감으로 배우라는 직업과 기다림의 철학적 주제를 새롭게 생각하게 한다.
이 공연은 이순재의 건강 악화로 예정보다 일찍 막을 내렸지만 곽동연 에스터와 박정복 밸의 공연은 5회 추가됐다. 서울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12월1일까지 열린다.
◆★공연 페어링 : 위스키
과학의 발달로 고속 숙성 위스키가 속속 등장하고 있긴 하지만 위스키는 '기다림의 미학'이 담겨있는 술이다.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될수록 부드럽고 깊은 맛과 향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래 묵은 위스키일수록 가격이 비싼 것은 당연지사다.
스카치 위스키를 기준으로 12년은 돼야 엔트리급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오래 걸리다보니, 오크통에서 숙성 과정을 거치는 와중에 일정 부분이 증발하기도 한다. 이를 두고 천사의 몫, '엔젤스 쉐어(Angel's Share)'라고 한다.
무대에 서고픈 갈망에 묵묵히 기다리는 대역 배우들의 이야기엔 기다림을 재료로 하는 위스키가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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