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기 관리해 전화번호 변작한 혐의
1·2심 무죄…"보이스피싱 인식 어려워"
"타인과 통신 연결 인식했다면 처벌 가능"
[서울=뉴시스] 이종희 기자 = 범행에 대한 인식 없이 해외 전화번호를 국내 번호로 바꿔주는 보이스피싱 중계기 관리책 역할을 수행했더라도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지난달 13일 사기,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퀵배달원인 A씨는 대구 중구에 위치한 한 고시원에서 중계기와 유뮤선 공유기를 설치하고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지시에 따라 유심을 중계기 특정 번호에 꽂아 보이스피싱 조직의 전화번호를 변작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A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해외 인터넷 전화를 국내 이동통신망과 연결하면서 발신전화번호를 국내 휴대전화번호로 표시되도록 하는 전형적인 중계기 관리책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A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아닌 단순 의뢰인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또한 해당 업무가 코인 환전 업무라고 알고 있었다며 보이스피싱 가담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1심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고의로 범행에 가담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가 인정되려면 적어도 피고인이 설치한 통신중계기, 유심 등을 이용해 휴대전화로 범죄를 위한 문자메시지를 발송한다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라도 인식했다고 볼 수 있어야 한다"며 "전자장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의 경우에는 통신중계기의 기능과 유심의 교체작업이 범죄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인식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했지만 2심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의 고의는 다른 사람들 사이의 통신을 연결해 준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있다면 처벌할 수 있다는 취지의 기존 판례를 인용해 A씨에게 고의가 인정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조직원과 공모해 보이스피싱 피해자들과 전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도록 매개함으로써 고의로 전기통신사업법에 금지하는 타인통신매개행위를 했다고 인정할 여지가 충분하다"며 "원심의 판단에는 타인통신매개로 인한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죄에서의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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