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1000만명 육박하는데…보호구역은 어린이보다 5배 적어

기사등록 2024/10/02 17:35:48 최종수정 2024/10/08 12:56:17

65세 이상 인구 943만명…어린이 2배

노인 500여 명 보행 교통사고로 숨져

하지만 노인보호구역은 전국 3874곳

어린이보호구역 5분의 1 수준에 그쳐

전문가 "재정 지원하고 구역 늘려야"

[서귀포=뉴시스] 우장호 기자 =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노인보호구역에서 만난 65세 이상 노인들은 노인보호구역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은 지난 6월20일 정체전선이 북상하며 호우경보가 내려진 20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서홍동 인근 횡단보도에서 우산을 쓴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 2024.06.20. woo1223@newsis.com
[서울=뉴시스]우지은 기자 = 2일 오전 9시10분께 서울 성동구 마장동의 한 횡단보도 앞. 보행자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지자 지팡이를 짚은 노인, 헤드폰을 낀 청년 등이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이때 오토바이 한 대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남성 노인 뒤를 휙 지나갔다.

약 9분 뒤에도 위험한 상황이 일어났다. 한 여성 노인이 교통섬과 인도 사이에 있는 짧은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는 중에 우회전하려는 대형차와 부딪힐 뻔했다. 놀란 운전자는 급정거했고, 노인은 움츠러들었다가 이내 횡단보도를 빠르게 건넜다.

이곳은 지난 2021년 노인 보행자 사고가 발생한 노인보호구역이다. 68세 여성이 횡단보도를 건너다 이륜차에 치여 중상을 입었다. 운전자의 안전운전 불이행 때문이었다. 3년이 넘은 이날도 비슷한 사고가 날 뻔했다.

뉴시스 취재진은 이날 노인의 날을 맞아 노인보호구역에서 65세 이상 노인들을 만났다. 노인들은 노인보호구역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지팡이를 짚고 길을 걷던 문현철(71)씨는 "다리가 아파서 먼 데를 못 간다"며 "노인보호구역이 늘어나면 좋고 더 안전하다고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횡단보도를 다 못 건너서 교통사고가 난 경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허리가 굽어서 보행보조기를 끌어야 한다는 박순자(85)씨는 "횡단보도 신호가 조금 더 길어지기를 바란다. 파란불이 켜지는 동시에 건너면 딱 맞는데 조금만 늦으면 늦는다"고 털어놨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던 김도언(71)씨는 아직 불편하지 않지만 나이가 더 들면 노인보호구역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청량리 근처 시장에 노인이 많고 짐도 많이 들고 있어 걷는 속도가 느려진다"며 "그런 곳은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면 안전하게 다니겠다"고 말했다.

노인보호구역에 잠시 택배차를 세운 김동형(55)씨도 노인보호구역 수가 증가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김씨는 "노인보호구역이 어린이보호구역보다 아무래도 적다"며 "담당하는 배달 구역에서 노인보호구역은 여기밖에 못 봐서 늘어야 한다"고 했다. 단속 카메라도 많이 설치하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3년간 노인 보행 교통사고는 꾸준히 증가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2021년 9893건, 2022년 1만435건, 지난해 1만921건의 관련 사고가 발생했다. 매년 500명 넘는 노인이 보행 중 교통사고로 숨졌다. 사망자는 2021년 601명, 2022년 558명, 지난해 550명으로 소폭 줄었지만 사고 건수가 늘면서 부상자는 증가했다.

노인 인구가 늘면서 노인 보행량이 많아졌고 그 영향으로 노인 보행 교통사고도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는 943만5816만명이고 14세 이하 인구는 570만5235명이다. 노인은 전체 인구의 약 20%를 차지했다. 어린이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하지만 노인보호구역은 어린이보호구역의 5분의 1 수준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어린이보호구역은 1만6375곳, 노인보호구역은 약 3874곳이다.

[무안=뉴시스] 전문가들은 노인보호구역을 늘리고 정부가 예산을 따로 지원해야 한다고 짚었다. 사진은 전남 무안군의 운행속도 시속 30㎞로 제한된 '노인보호구역' 도로. (사진=전남자치경찰위원회 제공) 2023.01.29. photo@newsis.com
전문가들은 노인보호구역을 늘리고 정부가 예산을 따로 지원해야 한다고 짚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노인보호구역은 노인의 인권과 삶의 질 문제라며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되는 초고령 사회에 들어가기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나 환경을 고령 친화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노인보호구역은 주로 노인복지관이나 종합복지관 앞"이라며 "복지관 앞에만 형식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어르신들의 이동이 많은 곳을 노인보호구역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로교통법 제12조는 노인복지시설, 시장 등 교통사고의 위험으로부터 노인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주변 도로 가운데 일정 구간을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적 증가뿐만 아니라 질적 개선도 강조했다. 허 교수는 "어린이보호구역은 민식이법 등을 통해 강력하게 조치하는데 노인보호구역은 그렇지 않다. 보행자 신호를 늘리거나 횡단보도 중간에 섬을 만들고, 속도를 위반하거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법적인 조치하도록 하면 좋겠다"고 했다.

예산 문제도 강조했다. 우승국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안전·방재연구팀장은 "행정안전부 등 중앙정부가 예산을 확보해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중앙정부가 돈을 줘야 지방자치단체들이 돈을 거기에 쓰는데 지자체 예산으로 구역을 지정, 관리하니까 부족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앙정부가 예전에 어린이보호구역 관련해 지자체에 많이 지원했듯이 노인보호구역도 지원하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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