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갔으니 한숨 돌렸다?…'한파 산재' 5년간 49건 중 39건 승인

기사등록 2024/10/01 09:30:00 최종수정 2024/10/01 09:56:33

2019년~올 8월 한파 산재 신청 49명…운수·창고업 많아

온열질환도 115건…기후위기 심화하며 근로자 재해도 늘어

산안법 작업중지권 있어도 유명무실…국회서 의무화 무산

'폭염·한파 산재 예방' 의무만 명시…2025년 6월부터 시행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눈이 내리고 있는 지난 2022년 12월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라이더가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 2022.12.15. kch0523@newsis.com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역대급 폭염'이 지나가고 본격적인 가을철로 접어들었지만, 이상기후로 인해 올 겨울 기록적인 한파가 닥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5년 사이 한파로 인한 산재 신청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면서, 건설현장과 운수업 등 기후 영향을 많이 받는 사업장에 대한 혹서기·혹한기 작업중지권 사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한파로 인한 한랭질환으로 산재 신청은 총 49건이었다. 이 중 38건이 승인됐다.

연도별로 신청 건수를 보면 ▲2019년 2건 ▲2020년 3건 ▲2021년 18건 ▲2022년 9건 ▲2023년 15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올해에는 1월~8월 2건이다.

업종별로는 기타(28건)를 제외하면 운수·창고 및 통신업(16건)이 가장 많았다. 이어 제조업(6건), 건설업(4건)순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50대가 15건으로 가장 많았다. 60대와 20대가 각각 10건으로 그 뒤를 이었고, 30대(7건), 40대·70대(각 3건), 10대(1건) 순이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은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즉시 근로자를 작업중지시키고 작업장소에서 대피시키는 등 안전조치 할 것을 사업주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근로자 역시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면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을 가진다.

하지만 이 '급박한 위험'에 기후 여건도 포함이 되는지 의미가 모호하고, 의무가 아닌 권고에 그쳐 그동안 노동계를 중심으로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산안법에 따른 규제가 강화되고 고용부의 현장점검도 이뤄지고 있지만 기후에 의한 산재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파 뿐 아니라 2019년부터 최근 5년 간 온열질환에 따른 산재 역시 115건 발생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다.

이에 제21대 국회에서는 산안법상 급박한 위험에 '폭염·한파'를 추가하고, 고용부 장관이 작업중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됐다. 하지만 경영계에서는 현행 법을 기반으로도 충분히 산재 예방이 가능하다며 반대하고 있어 번번이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입법이 좌절됐다.

22대 국회 들어서도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폭염·한파에 의한 근로자 보건조치를 사업주 의무로 명시하고, 고용부 장관 혹은 관할 시도지사가 기상 여건에 따라 작업중지 등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여야 논의 과정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작업중지 의무화는 또다시 빠졌다.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공공운수노조 전국민주우체국본부가 지난해 8월23일 서울역 광장에서 기후위기 집배원 안전대책 촉구, 집배관복지법 입법쟁취 서명운동 전개 기자회견을 열고 집배관 복지법 제정, 폭염 등 기상상태에 따른 집배원 작업중지권 확대를 촉구하며 인력산출기준에 기후위기를 제외한 우정사업본부를 규탄하고 있다. 2023.08.23. mangusta@newsis.com
주무부처인 고용부에서는 의무화에 대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힌 상태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 6월 발간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영향분석: 기후여건에 따른 작업중지 규정을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고용부는 입법조사처에 "2019년 산안법 전부 개정 시 고용장관이 중대재해가 발생한 때에만 한정해 작업중지를 할 수 있도록 한 취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이어 "고용장관이 작업중지를 사전예방적으로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해당 기후 여건에서 작업하는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에 위해 우려가 크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적용하는 것에 대한 적절성 여부도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현행 산안법상 사업주의 작업중지, 근로자의 작업중지 적용이 가능한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근로자가 폭염·한파 시 작업중지권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사업주를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사업장 내에서 발견한 유해·위험 요인을 근로자와 사업주가 자율적으로 개선해 산재를 예방하려는 근로자 작업중지 취지에 맞지 않다"고 답변했다.

소관 상임위인 환노위는 우선 작업중지 의무에 대해서는 논의를 더 이어가기로 하고, 현행 산안법에 폭염·한파에 의한 근로자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주 보건조치 의무만 추가하는 데 합의했다. 해당 내용을 담은 산안법 개정안은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내년 6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박홍배 의원은 "올겨울 매서운 한파가 예상되는 만큼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또다시 노동자의 희생이 예견된다"며 "더 이상 일터에서 죽고 다치는 노동자가 없도록 국정감사에서 고용부의 감독이 형식적인 것은 아닌지 철저하게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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