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위기·물가 부담' 두고 요금 인상 저울질
전력 판매 원가회수율 60%…물가 자극 '신중'
9년간 동결…찔끔 인상에 한전 정상화 역부족
[세종=뉴시스]손차민 기자 = 정부가 전기요금 조정을 앞두고 한국전력공사의 재무 위기와 국민 물가 부담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있다. 에너지 당국인 산업통상자원부와 물가 당국인 기획재정부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혼선을 거듭했다. 다만 최근 한덕수 국무총리가 인상에 대해 언급하며 무게추가 기울었다는 데 힘이 실린다.
29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5일 기자들과 만나 "에너지 가격이 원가를 반영하고, 상당한 수준으로 소비를 억제해야 한다고 보는 게 불편한 진실"이라며 "불편한 진실에 직면한다면 우리나라 에너지 가격은 외국에 비해 굉장히 싸고, 소비가 많이 된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한국의 전기요금이 연료비 원가를 반영하지 못하면서 외국보다 저렴한 수준이기에 전기 소비가 많다고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한전의 전기요금 원가 회수율은 60%다. 전기를 만들기 위해 100원에 원재료를 들여와 60원에 판매하는 것이다. 전기를 팔수록 손해를 보고 있다.
이에 산업부에서는 국제 에너지 가격 오름세에 발맞춰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전기요금을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수개월간 노력했고 지금도 작업 중"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다만 물가 당국인 기재부는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공공요금 인상이 최근 안정세를 찾은 물가를 다시 밀어 올릴 수 있어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상승 폭을 줄이며 41개월 만에 가장 낮은 2.0%를 기록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전기요금은 윤석열 정부 들어 50% 인상돼 국민 부담 정도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전의 재무구조와 에너지 가격 등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고심하는 사이 한전의 재무 상황은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한전은 지난 2021년 2분기부터 적자를 지속해 왔는데 지난 2분기 말까지 누적된 적자는 41조원이다. 이로 인한 부채 역시 202조8904억원(2분기 말 기준)으로 불어난 상태다.
한전 적자는 발전사에 전기를 비싸게 사 와서 싸게 파는 역마진 구조로 인해 발생한다. 최근 역마진이 해소되며 숨통은 트였지만, 마진폭을 늘리기 위해선 전기요금을 더 높여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기요금이 계속 동결된다면 '싸게 파는' 기조는 바뀌지 않는 셈이다.
지난해까지 소폭의 전기요금 인상이 있었지만, 한전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인상분에는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기요금은 지난 2013년 11월 이후 윤석열 정부 이전까지 동결됐다. 9년 동안 올리지 못했던 전기요금을 정상화하려면 상당 폭의 인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전기요금은 총 6번 올랐다. 주택용 전기요금은 5번에 걸쳐 ㎾h(킬로와트시)당 총 40.4원 올랐고 인상률은 39.6%에 달한다.
지난 2022년 2·3·4분기 합쳐 ㎾h당 19.3원이 인상됐으며, 지난해 1분기 ㎾h당 13.1원, 2분기에도 ㎾h당 8원이 연달아 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이후 전기요금 인상은 멈춰 섰다. 이후 지난해 4분기 산업용 전기요금만 ㎾h당 10.6원 인상된 바 있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지난 5월 "최후의 수단으로 최소한의 전기요금 정상화는 반드시 필요함을 정부 당국에 간곡히 호소한다"며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자구책을 강구하겠지만 한전의 노력만으로 대규모 누적적자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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