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의뢰제로 회색지대 환자 피해 우려
아토피환자 1·2차 병원 돌다 상급병원행
"동네병원·종합병원 의료질 높일 고민을"
"전공의 복귀없인 인력재편 해결책 아냐"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이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중증환자 비중 50% 이상 상향', '전문의와 진료지원(PA)간호사 위주 재편'을 담은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을 의결할 예정이다.
정부는 현재 50% 수준인 중증환자 비중을 높이는 상급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하기로 했다. 또 전공의 의존도도 현재 40%대 수준에서 20% 이하로 낮추도록 했다. 정부가 인센티브와 손실 보전 등을 위해 투입하는 건강보험 재원은 3조3000억 원 가량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 쏠림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하기로 한 '진료의뢰제'를 두고 의료계 내부에선 중증질환에 속하지 않지만 경증질환으로도 보기 힘든 '회색지대(Gray zone·그레이존)'에 속하는 일부 환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진료의뢰제란 환자가 2차 병원에서 3차 병원으로 전원할 때 기존처럼 개인이 아닌 병원이 예약해주는 제도다. 환자가 고난도 진료를 받지 않아도 될 것으로 판단되면 해당 상급종합병원과 연계된 진료 협력병원으로 가게 된다.
서울의 주요 대학병원 A 교수는 "가령 희귀난치질환으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만성질환인 류마티스 관절염, 전립성비대증, 아토피피부염 환자 등을 대상으로 초진한 결과 단순히 중증질환에 속하지 않는다며 기계적으로 협력병원으로 보내는 경우 일부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시기를 놓치는 사례들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 예로 동네 병원에서 경증으로 진단받은 전립성비대증 환자가 내원한 경우가 있었는데 진료해보니 중증이었다"고 했다.
특히 주로 영·유아나 어린이에게 발생하고 삶의 질과 직결되는 아토피 피부염의 경우 동네 병의원(1차병원)과 종합병원(2차병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환자들이 너도나도 상급종합병원(3차병원)으로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의 또 다른 대학병원 B 관계자는 "피부질환 환자의 경우 1,2차 병원을 돌고 돌다가 결국 3차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면서 "동네 병원들은 피부·미용 시술을 주로 하다보니 피부질환 환자는 별로 반기지 않고 일반 종합병원의 경우 동네 병원만큼 연봉을 맞춰주기 어려워 진료과목 중 피부과가 없는 병원이 다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B 관계자는 "동네 병원과 종합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환자들이 굳이 상급종합병원을 찾을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 결국 국민들에게 가장 좋은 것 아니냐"면서 "그런데 1,2차병원의 의료 서비스를 어떻게 더 향상시킬 것인지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너무 부족해 보여 아쉽다"고 말했다.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비중을 낮추고 전문의와 PA 간호사 위주로 재편하는 '구조 전환' 방안을 두고 의료계에선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대해 병원을 떠난 1만여 명의 전공의들의 복귀 없인 의료 공백을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공의 없이 PA간호사만으로는 수술과 시술은 물론 입원 환자 관리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아 내년에 전문의들이 대거 배출되지 않으면 전문의 위주 인력 재편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서울의 주요 대학병원 C 응급의학과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시행되는 심장, 뇌, 척수, 간·담도·췌장 등 수술은 난이도가 높아 PA간호사만으로는 수술과 시술을 할 수가 없다"면서 "수술 후 환자 관리도 환자의 생리학적 변화 등에 대해 잘 알아야 해 간호 인력에게 전적으로 맡기긴 힘들다"고 말했다.
또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이 학교와 수련병원을 떠나 있어 내년에는 신규 의사(인턴)와 전문의가 배출되지 않아 향후 최소 2~3년은 이대로 버텨야 되는데 과연 남은 인력이 버틸 수 있겠느냐"면서 "전문의 추가 이탈이 우려된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positive100@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