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 겔싱어, 취임 3년 만에 최대 고비
실수와 자만으로 "혁신 뒤처졌다" 평가
파운드리 포기 안할 듯…전열 정비 나서
인텔, 2027년 이후 재무구조 개선 여부 주목
[서울=뉴시스]이인준 기자 = 지난 2021년 2월 취임한 패트 겔싱어 CEO는 "반도체 제조 산업을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겠다"고 장담했다.
사업 경쟁력 우려로 2018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에서 철수한 지 3년 만의 일이다.
겔싱어는 올초에는 "2030년까지 세계 2위 파운드리 업체가 되겠다"고 또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삼성전자를 뛰어 넘고 파운드리 2위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을 담은 'IDM 2.0' 비전을 내놓자 미국 내에서는 환호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인텔은 올 들어 회복하기 힘든 손실이 이어지고 있다.
겔싱어 CEO 취임 3년 만이다. 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파운드리 사업부의 분할 매각설까지 나온다. 인텔의 반도체 제국 재건은 이제 달성 불가능한 목표로 받아들이는 전문가들도 있다.
미국 최대 반도체 기업인 인텔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인텔이 무너진 이유는 "혁신에서 뒤졌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인텔 공동창립자 고든 무어가 이론으로 정립하고 증명한 '무어의 법칙'(Moore’s Law)은 과거 인텔 혁신을 보여준 대표 사례다.
반도체에 집적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 숫자가 매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이 법칙은 사실상 인텔이 주도하는 반도체 기술의 발전 속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여겨졌다.
인텔의 혁신은 그러나 무어의 법칙에서 멈췄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2010년대 10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개발에 실패한 것이다. 초미세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ASML의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재무 부담을 이유로 도입하지 않기로 한 것도 뼈 아팠다.
CPU(중앙처리장치) 시대를 호령하던 인텔이 새로운 모바일 시대에 너무 자만했다는 진단도 들린다.
인텔이 주춤한 사이 TSMC와 삼성전자 등 후발주자들이 '마의 벽'으로 통하던 10나노 미만 제조 공정 개발에 성공하며, 파운드리 경쟁에서 앞서가기 시작했다.
겔싱어 취임 이후 뒤늦게 4년간 5개 첨단 공정을 개발한다는 '5N4Y 로드맵'을 실행했지만, 양산 경험에서 앞서는 선두 업체들과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인텔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1% 미만으로, 업계 10위권 밖이다.
외신에 따르면 인텔이 내년 양산 예정이던 1.8나노급(18A) 공정은 고객사 브로드컴의 반도체 제조 테스트 실패설로 구설에 오르고 있다. 미국과 독일, 말레이시아 등에서 진행 중인 신규 파운드리 팹 등 글로벌 생산기지 확보도 계획을 벗어나 연기되거나 백지화될 가능성이 나온다.
아직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을 매각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인텔은 미국 반도체 부흥 계획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인텔은 첨단 패키징 기술 분야에서도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인텔은 인력 감축 등 재무구조 개선을 시행하면서 파운드리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인텔은 최근 2나노급(20A) 공정은 포기하고, 차세대 18A, 1.4나노급(14A) 기술 개발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는 모양새다. 인텔은 제조 경쟁력 만회를 위해, 2나노 이하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차세대 EUV '하이-NA EUV'를 업계 최초로 도입했고, 이어 올 상반기 두번째 장비도 들여왔다.
인텔은 아직 전체 생산 물량의 85% 이상이 EUV 이전 공정에서 발생해,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이 크지만 앞으로 첨단 공정을 지속 출시하며 반전을 노린다는 계획이다.
겔싱어 CEO는 지난 8월 열린 콘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2026년 많은 신규 공장과 새로운 공정 기술이 가동되고, 2027년에는 좋은 시기를 맞을 수 있다"며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비용 감축 등 운영 개선을 내년에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겔싱어가 여기서 밝힌 '좋은 시기'란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시점을 말하는데, 겔싱어의 이 발언이 내년 이후 어떤 식으로 현실화 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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