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피해자 김대우씨, 국가 사과·배상 받지 못한 채 숨져

기사등록 2024/09/09 13:37:18 최종수정 2024/09/09 15:46:52
[부산=뉴시스] 형제복지원 피해자 김대우씨(왼쪽) 생전 모습. (사진=형제복지원사건 피해 생존자 모임 제공) 2024.09.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뉴시스]김민지 기자 = 부산의 인권유린 시설 '형제복지원'의 피해자 김대우씨가 국가로부터 사과와 손해배상을 받지 못한 채 향년 53세의 나이로 숨졌다.

9일 형제복지원사건 피해 생존자 모임에 따르면 식도암을 앓아오던 김씨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집에서 요양을 하던 중 지난 8일 오전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1971년 부산진구에서 태어난 김씨는 1981년 형제복지원에 처음 끌려간 뒤 퇴소와 입소를 반복, 총 세 차례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생전 김씨는 형제복지원에서 숱한 구타와 가혹 행위, 노동 착취를 겪었다고 진술했다.

앞서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서울중앙지법, 부산지방법원은 각각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특히 올 2월 부산지법은 김씨를 포함한 형제복지원 피해자 70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고, 정부와 부산시가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러한 1심 판결에 대해 국가가 항소했고, 김씨는 결국 국가의 사과와 손해배상을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됐다.

형제복지원사건 피해 생존자 모임 관계자는 "고인은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을 평생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가폭력으로 인해 형제복지원과 같은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해 국가는 그에 대한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사과는커녕 손배 배상금액을 한 푼이라도 더 줄이려고 하는 국가의 행태에 대해 참담한 심정이다"고 덧붙였다.

부산 북구에 있었던 형제복지원은 1975년 박정희 정권이 부랑인 단속 및 수용을 위해 제정한 내무부 훈령 410조에 의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1992년까지 운영된 형제복지원은 1960년 감만동 형제육아원으로 맨 처음 문을 열었다. 부산시와 '부랑인 수용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부터 명칭을 형제복지원으로 변경했으며 1986년까지 입소자는 총 3만8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망자 수는 기존에 알려진 552명보다 10여 명 늘어난 657명으로 집계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mingya@newsis.com